생각이 있는 이야기 102

전통

전통 이런 기원 보름에 찰밥을 먹는다. 오래된 전통이다. 신라에서 시작된 풍습이라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비처왕 때의 이야기다. 행차 중에 까마귀를 만나 병사에게 이를 따라가게 했더니 편지를 한통 가져왔다. 겉봉에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왕은 편지를 열어보고 그 안에 적힌 대로 거문고 집을 보고 활을 쏘았더니 그 안에서 간통하고 있던 승려와 궁주(宮主)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이 일을 계기로 정월 보름은 ‘까마귀 제삿날’이 되었고, 보름이 찰밥을 먹는 풍습이 정착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간통을 저지른 배우자에 대한 왕의 복수가 대보름 풍속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다. 처용 설화도 그렇다. 처용의 형상은 역병을 막아주는..

사업보국

사업보국 “그것은 완전히 기적일 것”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국가는 도움을 요청했고, 어떤 나라를 우리가 부유해진 노하우를 배우려 했으며, 또 어떤 나라는 한국의 경제와 민주주의를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 그런데 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이 민주당 체제 아래서 실행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확신이 없습니다. ... 그리고 중소기업과 경공업에 집중한 경제발전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대만과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결과와 관련, 사람들의 삶에 차이가 있나?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고 싶지만 너무 바쁘고 능력이 없어 답을 찾지..

공감능력

공감능력 이별의 정한 ‘이별의 정한’, ‘여성의 절절한 감정’, ‘한’.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 교수가 ‘가시리’를 설명하면서 가져온 단어들이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시리’는 깊은 슬픔이 맴도는 노래다. 양 박사가 조명한 ‘한의 정서’는 이후 김소월과 서정주의 시를 해석하는데도 요긴하게 활용됐다. 1986년, 김대행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부분을 주목했다. ‘좌절’, ‘돌이킬 수 없음’ 등 한, 정한, 회한을 모두 포괄하는 한의 범주로 접근할 수 있으나 어떻게든 그런 감정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소극적인 패배주의와 거리가 먼 정서라는 설명이었다. 고려속요는 민요에서 출발해 궁중 의례악으로 정착했다. ‘남녀상렬지사’의 괄호 안에 들어가는 속된 노래로만 보기는 힘들다...

예의란

확고한 확신 예의란 예의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예의 지켜라.” 예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나온다. 위는 윤미향 의원과 관련해 송영길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서 던진 말이고, 아래는 최근 김민석 의원이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을 옹호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재명 역시 문 대통령과 관련해 “윤석열,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춰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2021년 7월26일). 혹자는 말한다. 인간사에 반드시 예의가 필요한 것이지만,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 압도적 우위에 있는 존재이어야 가능하다. 이를테면, 왕이나 고관대작들 옆에서 호위하는 이들이 평범한 백성들에게 “예를 갖추시오.”하고 요구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도덕적 우위에 대한 확고한 확신과 신념이 있다. 이들은 독..

일제 보험

일제 보험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 해방 즈음 조선 사람 절반 가량이 ‘여기’에 가입했다. 보험이야기다. 1929년 ‘간이생명보험제도’가 시작됐다. 조선총독부 산하 체신국에서 보험을 담당했다. 보험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가입자 모집이다. 그러나 ‘간이생명보험’은 비교적 쉬웠다. 우선 집단으로 가입시켰다. 보험을 파는 입장에서는 일처리가 쉽고, 가입자로서는 보험료가 할인되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편의와 이점 때문에 단체 가입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의 경우 체납이나 중도해지가 빈번하게 발생한 까닭에 공동의 책임을 지위서 공동책임의 덫을 빠져나가기 힘들게 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얹었다. 간이보험 혹은 저축 비가입자의 경우 생활필수품 구매를 불허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동네에서 욕..

매창 시

매창 시 아전들이 기생의 문집을 만든 이유 조선 시대 문집 중 여자의 글을 모은 문집은 총 32종이 전한다. 개인 작품집인 경우도 있지만, 남편의 문집에 부록으로 끼워졌거나 가족 문집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문집은 거의 대부분 남편이나 아들, 사위, 형제 등 남자들이 편찬했다. 유희춘은 아내의 글을 문집으로 엮었고, 허난설헌(1563~1589)의 문집을 만드는 일에는 남동생 허균(1569~1618)이 나섰다. 사주당 이씨가 저술한 ‘태교신기’는 아들인 한글학자 유희가 한글로 음을 달아 세상에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여성 문집은 부안 기녀 이매창(1573-1610)의 시 58를 모아 간행한 시집이다. ‘계생(桂生)의 자(字)는 천향(天香)이다. 스스로 매창이라고 했다.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희망봉 발견

희망봉 발견 스위스가 결핍을 이겨낸 방법 ‘대항해 시대’ 서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단어다. 굳이 한 가지 요소를 더 언급하자면 ‘희망봉’이다. 바다를 막았든 열었든, 바다에서 아예 종적을 감춘 나라는 없다. 다만 바다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했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정해졌다. 그 적극성을 증명하는 지점이 ‘희망봉’이다.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수없이 넘어갔지만, 아시아의 상인들은 결코 희망봉을 넘어 유럽으로 진출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를 넘어 하늘이라는 새로운 ‘바다’가 열렸다. 항공기를 활용한 운송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바다가 없는 나라는 이 새로운 바다를 적극 활용해 교역의 활로를 열었다. 그중 대표적인 나라가 스위스..

시귀

시귀 귀신의 탄생 ‘우리나라 시인들은 서徐나 이李 같은 글자는 일찍이 사용한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이 사람의 나이가 어리니 필시 시마(詩魔)에 걸렸을 것입니다.’ 허균(1569 ~ 1618)이 쓴 시평서 ‘학산초담’에 실린 이야기다. 시마(詩魔), 즉 시마귀에 걸렸다고 추정되는 인물은 이현욱이었다. 그는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 ~ 1609)에게도 호평을 받았으나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허균의 말대로 시마가 떠난 뒤 시를 짓는 재능도 사라져버린 것일까. 1114년(예종9)에 과거에 급제한 정지상(미상~1135)은 시귀(詩鬼)를 만났다. 산속 절에서 공부하던 시절, 달 밝은 밤에 누군가 시를 읊었다. 목소리는 절 건물 뒤쪽에서 흘러나왔다. “스님은 보면서 절이 있나 의심하고, 학은 보면서..

광해군

광해군 중국이 변비 걸렸는데 왜 조선이 똥을 못 눠? 광해군은 세자 책봉을 받지 못한 상태로 왕좌에 올랐다. 왜 그렇게 깐깐하게 나왔을까? 그건 광해군 자체의 문제보다는 명 나라 내부의 사정 때문이었다. 명의 제13대 황제 만력제(1572~1620)는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자 신료들이 들고 일어났다. 적자가 없을 경우 장자를 권좌에 올려야 한다는 원칙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장자상속’은 명나라에서 자연법처럼 당연한 원리였다. 이 문제는 1586년 이후 만력제가 명을 다스리는 내내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었다. 이때 조선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어, 장자가 아니잖아? 안 돼!” 명의 예부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만일 조선에서 장자상속이라는 원..

동백아가씨~

동백아가씨~ ‘동백아가씨’... 왜색 시비가 아이러니한 이유 쉽게 끼어들기 힘든 논란이 있다. 친일 혹은 일본과 관련된 논란이다. 합리적인 분석보다는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나름 정확한 판단을 한답시고 논리적으로 파헤치다 보면 어느 사이 ‘민족반역자’가 되어 있기 일쑤다. ‘동백아가씨’ 논란도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사안이었다. 왜색 혹은 친일 논란이 일자 어느 누구도 여기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그랬다. - 1960년대 정치권에서! ‘동백아가씨’의 흥행은 폭발적이었다. 1960년대 여공들과 여급들의 애환을 달란 노래라고 알려져 있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 ‘국민 가요’였다. 대통령(박정희)의 애창곡이 ‘짝사랑’, ‘황성옛터’,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