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102

경주

경주 “문이 작아? 헐어버려!” 지역마다 전통이 있고,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과거가 남긴 뉘앙스가 은은하게 깔려있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경주에 대해 ‘아직도 옛 도읍지(한 나라의 서울로 삼은 곳)의 풍습이 남아 있다’고 썼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사람들에게서 어떤 뉘앙스를 읽은 게 아닐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수도이던 시절 경주에는 성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번성했다. 고려 성종 때인 987년에는 고려 3경 중의 하나인 동경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에, 특히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문화재가 황폐화되거나 사라졌지만 옛 도읍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갔던 듯하다. 조선이 들어선 후, 경주에 경상도 감영이 들어섰다. (1408년에 상주에 옮겼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

안순

안순 세종 임금의 ‘재난 해결사’ 발탁 조건 갑자기 재난이 닥쳤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화재면 화재, 기아면 기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사고가 일어난 지역에 대한 지식이다. 특정 지역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잘 모르면 재난 상황을 수습하기 힘들다. 1436년 조선에 흉작 사태가 벌어졌다. 수년째 이어진 재난이었다. 그중에서도 충청도가 가장 심했다. 임금은 충청도 관찰사에게 이런 교지를 내렸다. ‘근래에 굶주려 죽는 백성이 대단히 많다고 들었다. 내가 심히 송구하게 여긴다. 그런데 왜 경은 이러한 사정을 한 번도 보고하지 않는가? ...내가 사람을 파견하여 상황을 조사할 것이니 경은 온 힘과 마음을 다하여 널리 살피고 구휼하여 단 한 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황금궁전과 아무 상관없는 원숭이가 왜 ‘황금궁전 원숭이’가 됐을까 간혹 ‘이런 것까지 매매가 되는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것들이 있다. 마이클 샌델의 번역서 제목이기도 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범주에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매매대상들이다. 볼리비아 북서쪽에 자리잡은 마디디 국립공원에 ‘아우레이팔라티이’하는 새로운 원숭이가 나타났다. 아우레이팔라티이(aureipalatii)는 라틴어로 황금색(aureus)과 궁전(palatium)을 합한 단어다. 황금궁전이라는 의미다. 이 원숭이 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경매를 통해서였다. 이 새로운 영장류를 발견한 과학자가 ‘명명권’을 경매에 올렸다. 여기에 온라인 카지노 업체인 ‘황금궁전닷컴’이 응모해 이름..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university)은 학생들의 무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학교는 교과서, 교사, 그리고 학생으로 구성된다. 학교를 구성하는 이 요소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가르치는 내용이 너무 부실하면 학교 대접을 못 받고, 교사와 학생도 권리와 권위 문제를 놓고 숱한 갈등을 겪었다. 대학교의 탄생은 1100에서 1200년 사이에 가능해졌다. 이 시기에 ‘교과서’가 나왔다. 유럽이 암흑기를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지식들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스페인의 아랍계 학자들을 손을 거쳐 되돌아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천동설을 완성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의 저작들을 비롯해 그리스의 의사들, 새로운 산술, 로마의 법전들이 교사와 학생을 부르고 있었다. 지식의 양이 방대하고 깊어지면서..

지역 문화

지역 문화 ‘눈앞을 보지 못하면서 천리 밖을 보려는 것 같다’ “중국의 치란과 흥망은 어제 일처럼 밝은데, 동국(우리나라)의 일은 아득히 문자가 없던 시대의 일처럼 어둡다. 눈앞을 보지 못하면서 천리 밖을 보려는 것 같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나온 것이 1618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문신 권문해가 쓴 ‘대동운부군옥’은 1589년에 완성됐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백과사전이 출산되기 170년 전의 일이었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이자 류성룡, 김성일 등과 동문이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 송나라 음시부의 저작인 ‘운부군옥’의 체제를 가져와 책을 저술했다. 표제어 2만 성어에 인명 1700조목으로 정리해 20권 20책으로 압축, 한..

대학생활

대학생활 사라진 대학(college) 칼리지(college). 단과대학을 지칭한다. 미국의 경우 종합대학(university)과 구별해 4년제 단과대학을 칼리지라고 부른다. 2년제는 주니어 칼리지로 호칭한다. 칼리지의 원래 의미는 기숙사였다. “초기 칼리지 설립자들의 목적은 오갈 데 없는 가난한 학생들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만, 배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만큼 그곳에서의 삶 자체가 특별한 문화를 형성한 셈이다. 칼리지는 교육 및 사회활동의 중심 역학을 했고, 칼리지가 위세가 당당하던 때에는 대학은 그저 시험을 주관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조직에 불과했다. 칼리지가 대학 문화와 생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파리의 경우 1180년부터 칼리지가 세워졌고, 1500년에는 그..

세종대왕 업적

세종대왕 업적 대왕, 시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꺼내든 카드는?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급선무니, 직무에 적임자인 관원을 선발한다면 모든 일이 다 잘 다스려진다.” - 세종실록 5년 11월25일 조선시대에서는 과거로 인재를 선발했다. 필기시험인 만큼 이견이 적었다. 문제는 이 시험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재를 파악되느냐 점이었다. - 이는 필기시험이 가지는 공통적인 난제였다.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심층적인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과거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게다가 시험 과목이 한정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요즘 시행되는 필기시험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 뛰어난 인재를 골라내는 완벽한 시험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종은 시험 외에 인재 추천법을 적극 활..

내게 이런일이

내게 이런일이 “내게 왜 이런 일이!” 그럴 땐 이렇게... 뭇 사람들의 칭송도, 권력자의 신뢰도, 한껏 자세를 낮춘 겸손과 검약도 소용없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셋 중 하나만 잡아도 인생이 평탄했을 테지만, 이 사람은 세 가지를 두루 갖추고도 결국 삶의 고비를 맞았다. 신흠(1566∼1628)의 이야기다. 명성으로 치면 이식, 이정구, 장유와 더불어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고, 선조가 승하할 때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한 일곱 명의 신하에 속했고(유교칠신), 아들(신익성)이 선조의 딸 정숙옹주에 장가들 때도 나라에서 좁고 누추한 집을 수리해주려 했으나 “예를 행하기엔 충분하다”는 말로 이를 고사했다. 한 마디로 ‘흠’ 잡을 데를 찾기 힘든 행적과 인품이다. 그런 그에게도 고난의 시절이 찾아왔다. ..

민주주의 가치

민주주의 가치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비결 정치판에서 중견과 신인이 맞붙으면 내세우는 장점이 제각각이다. 경험이 많은 축은 대부분 노련함과 경험을 내세우고 신진 세력은 아이디와 열정으로 맞붙는다. 뒤집어 말하면 중견은 미숙함을, 신진은 낡은 생각과 고루한 정책을 경계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권력자의 막장짓’이다. 조금 미숙하거나 낡은 정책도 어느 정도 수정이 가능하다. 수습 불가능한 것은 절대 권력자의 대책 없는 막장짓이다. 이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가 탄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2,500여년 전 인도에서 민주주의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그 즈음인 기원전 508년에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이를 법제화했다. 권력자를 견제하려는 노력이었다..

중국 경제성장률

중국 경제성장률 “산업혁명? 운이 좋았던 것” “현재 시 주석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역동성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 걸로 보인다.” 중국이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증시 상장을 규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향후 45조달러(약 5경1556조5000억원)의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 경제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인데,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면 좋겠지만 정치적 후진성을 놓고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해 한해, 혹은 하루 하루 갈림길에 서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바로 중국의 형편이다. 세계가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롤러코스트를 탄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역사다. 유럽에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1700년대) 중국과 유럽은 세계총생산에서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