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102

기득권

기득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다. 광고 카피가 인상 깊다.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계층 이동’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많이 힘들어진 건 사살이다.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면서 끼리끼리 결속을 다지고 높은 벽을 쌓기가 수월해진 까닭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다. 기득권을 확고히 하려는 세력과 이를 허물어뜨리는 이들의 다툼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조선시대의 이야기다. 먼저 ‘힘’을 가진 관리들이 기득권 챙기기에 나섰다. 그들은 임진왜란 이후 특권 중의 특권인 군역 면제를 실현시켰고(1627년), 신분증을 호패도 각패(角牌)를 차서 나무도 만든 패를 달고 다니는 잡역 층과 구분했다. 양반들은 문중과 혈연, 지연, 학연으로 헤쳐모를 ..

나를 표현하기

나를 표현하기 한국인 정약용 대륙적인 스케일, 자유분방한 감정 표현, 절제되고 세밀한 정서. 한 중 일의 성격을 비교할 때 흔히 동원되는 단어들이다. 이중에서 한중을 비교하자면, 그림을 그릴 때도 차이가 있었던 듯하다. 중국은 사물의 모습 그 자체에 집중하는 바람에 개성이 부족한 반면, 조선은 사물은 하나의 모티브일 뿐 붓놀림이 핵심이었다. ‘나’를 보다 확실하게 표현한 셈이었다. 이런 차이는 여러 부분에서 드러난다. 이를테면, 동양의 고전인 를 해석할 때도. ‘교언영색(巧言令色)’. 에 두 번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놓고 주희(朱熹, 1130~1200)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의견 차이가 흥미롭다. 주희는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한 사람 중 ..

대기업

대기업 오랑캐 기업 ‘덩치는 크다. 그러나 실속은 없다.’ ‘무엇이든 다 한다. 그러나 진짜 잘하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큰 덩치로 뭘 하려는 걸까? 많은 일들을 하겠지만 헤비급 기업 밑에서 일하는 ‘근육질’ 중소기업을 길들이는 일도 그 중의 하나다. - 생명을 질기게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전쟁터 같은 경제 환경에서 나른 괜찮은 전략인 듯하다. - ‘근육질’로 체질 개선을 하려는 노력이 아쉽긴 하지만. 국가의 흥망성쇠도 기업과 비슷하다. 명과 조선, 청의 관계가 그렇다. 일본이 조선을 치자 명은 조선으로 파병한다. 명과 조선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는다. 뜻밖의 ‘외부 세력’ 하나 때문에 두 대기업이 휘청거린 셈이었다. 이때를 노린 중소기업이 하나 있었다. 여진족이었..

세상살이

세상살이 이길 자리로 가라 삶은 전쟁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긍이 갈 때가 있다. 병법서를 읽어보면 특히 그렇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승리를 알 수 있는 요소로 다섯 가지가 있다. 싸워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면 이긴다. 병력의 운용을 알면 이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의지가 같으면 이긴다. 미리 준비한 자기 준비하지 못한 자와 붙으면 이긴다. 이 다섯 가지가 승리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모공편’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미리 준비한 자라는 대목이다. 상대를 파악하고 병력의 운영을 알고, 윗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 모두 준비에 속한다. 준비가 잘 되면 이기고, 반대가 되면 진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투는 이미 끝난 것이다. 우리 삶과 어찌 이토록 닮았을까. 준비되..

말장난

말장난 '말'에 주목해야 레이건(1911 - 2004, Ronald Reagan)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경험도 엷고 지적 호기심도 없는 인물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단어 사용이 예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관계’를 헷갈리는 것을 넘어서 교묘한 ‘말장난’에 넘어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레이건이 정치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세계의 격변기였다. - 위험한 시기였던 것이다. 경제위기가 불어 닥쳤다. 1960년대와 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자원 부국들이 7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침체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들 제3세계 국가들의 채무가 증가하면서 성장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국가들은 사회주의 발전 모델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신봉..

의지

의지 인간은 적응한다, 고로 노예가 된다 인간은 적응한다. 때로 무기력과 절망에도. 1930년대 의 월터 듀란티(Walter Duranty) 기자는 소련 특파원이었다. 그는 스탈린에 대해 곧잘 우호적인 기사를 썼는데, 그 덕에 서방 세계 사람들은 스탈린에게 어떤 매력마저 느꼈다. 급기야 1932년에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스탈린은 ‘악당’이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 지대로 곡물을 수출하던 나라였지만, 1922년 소련으로 편입되면서 황폐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원인을 제공한 것이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집권 후 우크라이나를 경제 부흥에 활용했다. 이 지역의 밀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소련의 산업화 계획에 착수했다. 계획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굶주려야 했고, 그 ..

신뢰성

신뢰성 바께아노 가우초(gaucho). 남아메리카의 라플라타강(江) 유역과 우루과이강·파라나강 하류 등의 광대한 목축지대인 팜파스의 주민 또는 목동이다. 이들 중에 ‘바께아노(baquia)’라고 불리는 부류가 있었다. 바께아노들은 지형과 길에 해박했다. 사방 2만 레구아(10km)에 있는 평원, 숲, 산을 훤히 꿰고 있다. 그들의 능력이 가장 요긴하게 쓰였던 곳은 군대였다. 군대에서 이들은 장군 옆에 붙어서 지냈는데, 길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 멀리서 다가오는 적들이 일으키는 먼지의 농도를 보고 그 수를 알려주기도 했다. 장군들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했어도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았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배신하면 부대의 모든 비밀이 적의 수준에 들어갔다. 군대의 명운을 가르는..

전봉준

전봉준 전봉준의 ‘생각’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담장을 제 스스로 쌓아올린다. 조력자들도 있다. - 마음이 통하는 사람. 나와 기꺼이 함께할 사람. 의리 있는 사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 대개 ‘나’의 감옥에 벽돌을 하나씩 올리는 악역을 맡는다. 심리학이 설명하는 심리현상 중에 ‘집단극화’라는 것이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토론하다 보면 점점 더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집단사고와도 비슷하다. 조선 정벌을 낙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패거리나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시달렸던 히틀러와 무리들이 가장 정확한 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무척이나 고상하고 현실적이며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전형적인 ‘악당’들만 그런 착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

의리

의리 무서울만큼 정상? 당연한 일이다. 의리다. 그들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똑같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 ‘조금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줄 아량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깥의 비난쯤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의리’가 있으니까. 이런 현상은 어느 집단에서나 나타난다. 똑같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국회의원들의 경우 치열한 선거전), 동일한 자부심을 가진 집단에서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이야 지극히 정상적이다. 얼마 전 그런 훈훈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집단 중의 하나가 ‘조금 잘못한’ 동료 하나는 의리로 감싼 사건이었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의리’로 견뎌내는 분위기다. 어쩌면 ‘내가 걸려들면 그땐 나도 덕을 보겠지’하는 얕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주자..

고대 로마 역사

고대 로마 역사 혁명은 없었지만... 혁명적인 변화의 시기가 있고, 점진적 발전의 시대가 있다. 산업혁명 같은 혁신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쉽지 않다. 고대 로마는 점진적인 발전을 누린 국가였다. 로마의 발전이 급진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노예제도의 지속을 통해 알 수 있다. 과잉 인구로 인한 무료 노동의 가격이 낮아졌다면 노예 노동이 불필요해졌을 것이다. 로마는 역사상 가장 숫자나 범위, 복잡성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노예제를 유지했다. 로마는 부의 편중이 심했지만 그럼에도 탄탄한 중간 계층이 존재했다. 그것이 로마의 붕괴를 막았다. 로마는 생산성을 꾸준히 증가시켰으나 새로운 일자리 역시 꾸준히 만들어갔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잡기는 로마를 지탱하는 원천이었다. 로마의 발전은 뒷받침한 것은 기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