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의지

프로시안 2022. 6. 19. 16:04

의지

 

 

 

 

 

 

 

 

인간은 적응한다, 고로 노예가 된다
  
  
  인간은 적응한다. 때로 무기력과 절망에도.
  
  1930년대 <뉴욕 타임즈>의 월터 듀란티(Walter Duranty) 기자는 소련 특파원이었다. 그는 스탈린에 대해 곧잘 우호적인 기사를 썼는데, 그 덕에 서방 세계 사람들은 스탈린에게 어떤 매력마저 느꼈다. 급기야 1932년에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스탈린은 ‘악당’이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 지대로 곡물을 수출하던 나라였지만, 1922년 소련으로 편입되면서 황폐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원인을 제공한 것이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집권 후 우크라이나를 경제 부흥에 활용했다. 이 지역의 밀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소련의 산업화 계획에 착수했다. 계획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굶주려야 했고, 그 기아를 발판으로 소련이 일어날 것이었다.
  
  스탈린은 부유한 지주를 뜻하는 쿨라크를 추방하는 계획을 짰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1931년 한해에 13만 명의 쿨라크 가족을 추방했다. 농촌 소비에트 지역에서 550만 명이 쫓겨났다. 그들은 집단 농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을 도와주는 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인민의 적이었기에. 이런 과정을 거쳐 농민의 1936년에는 농민의 90%가 집단 농장에 소속됐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배신자도 나왔다. 카가노비치(Lazar Moiseevich Kaganovich, 1893~1991)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물질적 말살을 기획했다.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그는 그 공로로 공산당 전체에서 고위직에 승진했다. 스탈린의 오른팔이었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다. 산 자들은 썩은 고기와 개나 고양이를 잡아먹으면서 연명했다. 참혹한 시절이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독립했다. 하지만 유럽의 곡창 지대로 불리던 시절의 활력을 되찾지 못했다. 2008년 우크라이나는 유엔을 통해 국제적인 지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요구를 철회했다. UN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까닭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비에트 시절 어두운 권력을 쥐고 있던 이들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봄을 간절히 원하던 민주주의자들이 암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들 중에는 ‘소련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그때는 실업자가 없었고 물가도 그리 높지 않았다는 거였다. 현실은 ‘언제 출구가 나타날지 모르는 터널 속’이라고 절망하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우크라이나다움, 혹은 과거의 활력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아류 소련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분열도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다움을 완전히 회복했을까. 다이내믹한 면을 보면 그런 것 같다가도 어떤 구석을 보고 있자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침략국’의 과거사 왜곡은 어쩌면 2차적인 문제일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절망이나 비관에 물들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이다. 그것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보다 큰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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