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전봉준의 ‘생각’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담장을 제 스스로 쌓아올린다. 조력자들도 있다. - 마음이 통하는 사람. 나와 기꺼이 함께할 사람. 의리 있는 사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 대개 ‘나’의 감옥에 벽돌을 하나씩 올리는 악역을 맡는다.
심리학이 설명하는 심리현상 중에 ‘집단극화’라는 것이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토론하다 보면 점점 더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집단사고와도 비슷하다. 조선 정벌을 낙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패거리나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시달렸던 히틀러와 무리들이 가장 정확한 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무척이나 고상하고 현실적이며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전형적인 ‘악당’들만 그런 착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혁명가 전봉준도 치우친 생각을 가졌다. 그는 관에 집힌 후 심문을 받았다. 1895년 3월 7일 2차 심문에서였다.
- 네가 작년 3월에 행한 기포는 백성을 위해 제해(除害)할 뜻으로 했다는데 그러한가?
= 그렇다.
- 그런즉 내직에 있는 자들이나 외임의 관원들도 모두 탐학스러운가?
= 내직에 있는 자들도 매관육작(賣官鬻爵)을 일삼으니 내외를 물론하고 다 탐학스럽다.
- 그렇다면 전라도 한 도의 탐학스러운 관리를 제거하고자 기포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조선 팔도를 한 가지로 이같이 할 의향이었는가?
= 전라도 한 도의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하는 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 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학은 청일전쟁의 단초가 되었다. 청일전쟁은 갑오경장의 조례 208건을 수립시켰다. 좋게 귀결된 것 같지만 이 일들로 일본이 조선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했다.
전봉준은 공자가 말한 명(命)을 믿었을까. 공자는 “명을 모르면 군자가 아니다.”고 했다.
명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말한다. 무언가를 힘껏 노력해본 사람은 명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철을 따라서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히듯이 모든 것이 적절한 때가 있다. 농사꾼은 열심히 땀을 흘린다고 해서 꽃이 일찍 피거나 열매가 철없이 달릴 거리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자연이 정한 명을 안다.
긴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역사는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당장은 그릇된 것이 옳은 것 위에 올라서고, 바른 것이 굽은 것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이 많다.
자기 삶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 경영법인지도 모른다.
참고>
최익현 외, 이주명 편역,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필맥, 2014년, 137쪽, 3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