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이런 기원
보름에 찰밥을 먹는다. 오래된 전통이다. 신라에서 시작된 풍습이라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비처왕 때의 이야기다. 행차 중에 까마귀를 만나 병사에게 이를 따라가게 했더니 편지를 한통 가져왔다. 겉봉에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왕은 편지를 열어보고 그 안에 적힌 대로 거문고 집을 보고 활을 쏘았더니 그 안에서 간통하고 있던 승려와 궁주(宮主)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이 일을 계기로 정월 보름은 ‘까마귀 제삿날’이 되었고, 보름이 찰밥을 먹는 풍습이 정착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간통을 저지른 배우자에 대한 왕의 복수가 대보름 풍속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다.
처용 설화도 그렇다. 처용의 형상은 역병을 막아주는 부적처럼 여겨졌지만, 처용이 큰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전염병과의 투쟁을 성공으로 이끌어서가 아니었다.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존재’와 간통한 것을 보고도 덤덤하게 대처했다는 일화가 전부다. 여기서도 ‘성(性)’이 등장한다.
풍습이나 기원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유목민들에게나 있었을 법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매종무열왕의 서자이자 거득공(車得公)이 바로 그 이야기다. 삼국통일 후 문무왕이 그를 총재(冢宰)에 임명하자 나라의 사정을 두루 알아보려고 승복을 입고 서울을 나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무진주의 관리 안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거득공이 만만찮은 사람임을 알아보고는 첩들에게 말했다.
“오늘 이 거사를 모시고 자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두 사람은 완강하게 “죽어도 못 하겠다”고 했으나 한명은 이를 수락했다.
신라라는 나라는 어떤 곳이었을까? 그보다, 신라의 전통과 풍습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역사에 스며들었을까.
참고>
이영숙, <사랑에 밑줄친 한국사>, 뿌리와이파리,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