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확신
예의란
예의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예의 지켜라.”
예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나온다. 위는 윤미향 의원과 관련해 송영길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서 던진 말이고, 아래는 최근 김민석 의원이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을 옹호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재명 역시 문 대통령과 관련해 “윤석열,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춰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2021년 7월26일).
혹자는 말한다. 인간사에 반드시 예의가 필요한 것이지만,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 압도적 우위에 있는 존재이어야 가능하다. 이를테면, 왕이나 고관대작들 옆에서 호위하는 이들이 평범한 백성들에게 “예를 갖추시오.”하고 요구했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도덕적 우위에 대한 확고한 확신과 신념이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 주역 혹은 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의 도덕적 우위를 주장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이라는 수식을 만들어 ‘정부’에 붙였다. 자신이 군인 출신이 아니고,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최초의 정부라는 의미에서 ‘문민’이라고 했다. 이전 대통령인 노태우도 국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으나 그에게는 무의미한 정통성이었다. ‘문민 정부’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정부였다. 그들은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애썼다. ‘과거사’는 ‘청산’되었다.
뉴스와 역사는 펙트에 기반해야 한다. 시간적 배경이 다를 뿐 ‘진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특정한 가치관을 투영해 다듬고 가리고 굽히는 작업이 아니다. 정치와 권력이 학문의 영역에 남겨두어야 할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마찰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건 슬로건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참고>
김은희, <신양반사회>, 생각의힘,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