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일제 보험

프로시안 2022. 5. 3. 18:40

일제 보험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



해방 즈음 조선 사람 절반 가량이 ‘여기’에 가입했다. 보험이야기다. 1929년 ‘간이생명보험제도’가 시작됐다. 조선총독부 산하 체신국에서 보험을 담당했다.



보험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가입자 모집이다. 그러나 ‘간이생명보험’은 비교적 쉬웠다. 우선 집단으로 가입시켰다. 보험을 파는 입장에서는 일처리가 쉽고, 가입자로서는 보험료가 할인되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편의와 이점 때문에 단체 가입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의 경우 체납이나 중도해지가 빈번하게 발생한 까닭에 공동의 책임을 지위서 공동책임의 덫을 빠져나가기 힘들게 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얹었다. 간이보험 혹은 저축 비가입자의 경우 생활필수품 구매를 불허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동네에서 욕 얻어먹고 생필품도 구하기 힘들었다. 이 정도면 보험 ‘영업’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당시의 상황을 동아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가입자의 실상을 알려 하면 여유가 있거나 자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맹목적 아니 강권을 회피치 못하여 부득이 가입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실적은 대불량이다... 왕왕히 각 지방우편소가 원유원은 자가의 성적을 나타내기 위하여 국가의 진의를 무시하고 생활이 극난한 이에게 이것을 강권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종의 고통을 감케 하니 이 어찌 온당한 일이랴.’



보험료는 많이 줬을까? ‘아니오’였다. 예정이율(보험사가 금융소비자에게 보험금·환급금을 지급할 때 적용하는 이율)과 보험료 계산의 기준으로 삼는 사망률의 기준이 일본과 동일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인들이 일본인들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일본만큼의 비율을 적용하면 보험이 망할 염려가 있었기에 기준을 일본 것으로 가져왔던 거였다.

 

 



대외홍보에도 힘썼다. 조선총독부는 간이보험의 적립급으로 대부사업도 하지만 사회공공사업을 펼친다고 홍보했다. 순회건강상담소가 대표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의사들의 반발로 1939년까지 운영할 수 없었으나 의료 인프라가 열악했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대환영이었다. 순회건강상담소에서는 보험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은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봤을 때 보험료를 식민통치 비용으로 유용한 셈이었다.)



중일전쟁이 한창일 때는 군인 가족에게 특별 무료건강상담을 하기도 했다. 건상상담소와 순회건강상담소는 모두 간이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를 썼다. 조선인 주머니에게 빼낸 돈ㅇ로 복지사업을 펼쳤다.


 

 


1935년부터는 재해복구 및 구제자금을 대부금으로 썼다. 1935년과 1937년의 대부 금액을 비교하면 15배 증가됐다. 식민지 체제 안정을 위해 자작농 창설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고,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전체 공공대부의 40%을 전쟁터에 식량을 공급하는 비용으로 빌려줬다.



1940년부터는 ‘조선직업소개소령’을 따라 직업소개소에 대한 대부가 시작됐다. 공습으로 발생하는 화재에 대처하려고 1939년에 ‘경방단’을 조직했는데, 1941년 경방시설에 대한 대부를 시작했다. 전쟁 이후 전시자원을 위한 사회사업비로 쏟아부어졌다.



요컨대, 식민지 백성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만든 돈으로 식민지 통치비용과 전쟁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참고>

조소연, <‘보험판매왕’ 조선총독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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