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공감능력

프로시안 2022. 5. 27. 21:18

공감능력

 

 

 

 

 

 

 

 

이별의 정한



‘이별의 정한’, ‘여성의 절절한 감정’, ‘한’.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 교수가 ‘가시리’를 설명하면서 가져온 단어들이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시리’는 깊은 슬픔이 맴도는 노래다. 양 박사가 조명한 ‘한의 정서’는 이후 김소월과 서정주의 시를 해석하는데도 요긴하게 활용됐다.



1986년, 김대행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부분을 주목했다. ‘좌절’, ‘돌이킬 수 없음’ 등 한, 정한, 회한을 모두 포괄하는 한의 범주로 접근할 수 있으나 어떻게든 그런 감정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소극적인 패배주의와 거리가 먼 정서라는 설명이었다.

 



고려속요는 민요에서 출발해 궁중 의례악으로 정착했다. ‘남녀상렬지사’의 괄호 안에 들어가는 속된 노래로만 보기는 힘들다.



양 박사의 해석을 따르면 원망과 슬픔에 허우적대는 노래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남녀상렬지사’에 불과하다면 축 늘어지는 데다, 낯 뜨겁기 짝이 없는 음악을 국가 행사에서 거리낌 없이 즐겼다는 말이 된다. 나라를 이끄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백성이 진취적이고 건강하기를 바랄 것이다. 고려속요를 그저 처연하고 음란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고려속요에 드러난 정한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자기표현이다. ‘가시리’뿌 아니라 대개의 속요가 감정을 격하게 쏟아낸 뒤 이를 순화해가는 과정을 따른다. ‘이별의 정한’이나 ‘한’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결과 형성되는 ‘공감’이라고 봐야 한다.

 



드라마 ‘파친코’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삽입했다. 한국인이 그저 슬프고 처연하기만 했다면, 겹겹이 덮친 질곡의 역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솔직한 표현과 공감,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우리네 정서 시스템이었다. 슬픔을 다 쏟아낸 뒤 이를 거대한 에너지(흥)로 털어내고 어떻게든 극복해내고 마는 구조다.



참고>

염은열, <공감의 미학 고려속요를 말하다>, 역락, 2013년

'생각이 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통  (0) 2022.05.31
사업보국  (0) 2022.05.28
예의란  (0) 2022.05.26
일제 보험  (0) 2022.05.03
매창 시  (0) 202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