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무서울만큼 정상?
당연한 일이다. 의리다. 그들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똑같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 ‘조금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줄 아량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깥의 비난쯤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의리’가 있으니까.
이런 현상은 어느 집단에서나 나타난다. 똑같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국회의원들의 경우 치열한 선거전), 동일한 자부심을 가진 집단에서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이야 지극히 정상적이다.
얼마 전 그런 훈훈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집단 중의 하나가 ‘조금 잘못한’ 동료 하나는 의리로 감싼 사건이었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의리’로 견뎌내는 분위기다. 어쩌면 ‘내가 걸려들면 그땐 나도 덕을 보겠지’하는 얕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주자. 의리다. 지극히 정상적인 동료애.
혹자는 그들이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괴물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무서울만큼 정상적이다. 서로를 돌아보는 의리였을 뿐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나치패들이 모두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대부분 정상적이었다. 특히 가장 적극적인 학살가담자 중의 한명이었던 아이히만의 경우 지극히 성실했다. 게다가 군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재판에서 그저 열심히 군인답게 살았을 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군인은 명령에 복종할 뿐 절대 한눈 팔면 안 된다). - 이 고백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잘 모른다. 바깥에 있어서 오해하고 있다. 그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들만큼 고생해서 그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비슷한 위치에 오른 동료들에 대한 의리와 애정은 애국심보다 높이 용솟음칠 것이다. 그들의 ‘의리’와 ‘양심’이 타락했다고 지레 짐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아이히만처럼) 무서울만큼 정상적이다.
‘방탄’? 아니다. 의리다.
참고>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7, 379쪽~
당연한 일이다. 의리다. 그들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똑같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 ‘조금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줄 아량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깥의 비난쯤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의리’가 있으니까.
이런 현상은 어느 집단에서나 나타난다. 똑같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국회의원들의 경우 치열한 선거전), 동일한 자부심을 가진 집단에서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이야 지극히 정상적이다.
얼마 전 그런 훈훈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집단 중의 하나가 ‘조금 잘못한’ 동료 하나는 의리로 감싼 사건이었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의리’로 견뎌내는 분위기다. 어쩌면 ‘내가 걸려들면 그땐 나도 덕을 보겠지’하는 얕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주자. 의리다. 지극히 정상적인 동료애.
혹자는 그들이 비정상적이거나 혹은 괴물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무서울만큼 정상적이다. 서로를 돌아보는 의리였을 뿐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나치패들이 모두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대부분 정상적이었다. 특히 가장 적극적인 학살가담자 중의 한명이었던 아이히만의 경우 지극히 성실했다. 게다가 군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재판에서 그저 열심히 군인답게 살았을 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군인은 명령에 복종할 뿐 절대 한눈 팔면 안 된다). - 이 고백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잘 모른다. 바깥에 있어서 오해하고 있다. 그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들만큼 고생해서 그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비슷한 위치에 오른 동료들에 대한 의리와 애정은 애국심보다 높이 용솟음칠 것이다. 그들의 ‘의리’와 ‘양심’이 타락했다고 지레 짐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아이히만처럼) 무서울만큼 정상적이다.
‘방탄’? 아니다. 의리다.
참고>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7, 3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