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102

문익점

문익점 민생 ‘민생은 뒷전’. 정치와 관련해 가장 흔히 등장하는 문구다. 언론에서 묘사하는 것만큼 그렇게 관심이 없는지는 몰라도 가끔 너무 정치적 논리에만 신경을 쏟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 1329~1398)도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가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사신단 일행을 따라나섰을 때였다. 그 시기 원나라는 중대한 사건 하나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공민왕을 몰아내고 충선왕의 셋째 아들은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세우려는 거였다. (덕흥군은 당시 원에 있었다.) 원은 덕흥군에게 군사 1만을 책정하는가 하면, 사신단들도 도무 덕흥군에게 줄을 서도록 했다. 사신들로서는 난감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모르되 안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

개성

개성 개성주의 “행복한 삶이란 자기 개성에 맞게 사는 것을 뜻한다.” - 세네카 우리 시대 ‘개성’이 얼마나 살아 있을까. 어려서 배우는 공부부터 삶의 습관이나 취미까지, ‘개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교통과 통신이 덜 발달한 시기에는 달랐을 것이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들이 살고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요즘은 아무리 오지로 가더라도 ‘여행’일 뿐이지만.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개성을 아는 것을 행복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 그 시기에도 ‘자신’을 모르고 무턱대고 행복해지려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모든 사람들이 왕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온갖 헛된 시도를 한다.’ 설사 그런 시도가 성공하더라도..

상식

상식 그가 배를 먹지 않은 이유 ‘변화’.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다. “무조건 변화하라”고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변화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은 겉은 외물을 따라 변화했으나 속은 변하지 않았다.’ - , 외편, 지북유(知北遊) 허형(許衡)은 원 나라의 쿠빌라이에게 등용돼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기에 원 나라의 위징(魏徵)으로 불렸다. - 위징은 당태종이 자신의 잘잘못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을 정도로 명신이었다. 허형은 젊은 시절 몽골군을 피해 피난을 간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배나무 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배를 따 먹었지만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을..

이문건

이문건 대감집 여종 “내가 먼저 사랑했어요” 돌금. 여종의 이름이다. 16세기 사람이었던 이문건(1494-1567)의 집에서 일했던 여자 종이었다. 이문건 일가는 경북 성주에 유배와 있었다. 돌금은 이문건이 쓴 일기에 1546년부터 1563년까지 17년 동안 간간이 이름이 등장한다. 돌금은 충청도 보은에 있는 여비 삼월의 딸이었다. 돌금은 남동생이 셋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 혼인을 했고, 2년 후 남편과 함께 강전이 유배를 살고 있는 성주로 이주했다. 돌금은 한 성격하는 여자였던 듯하다. 그는 상전의 며느리를 우습게 보았다. “돌금이 며느리를 업신여겨 말을 거역하고 혹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거짓으로 꾸민다. 너무 화가 나 천택을 시켜 등 30대를 때리게 했다.”(1553년 9월 18일) “돌금이 ..

도덕적 우월감

도덕적 우월감 양반이 뭐길래 며느리가 돌아왔다. 전쟁 통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임금에게 “아들 부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시아버지의 이름은 장유(1587-1638), 왕의 사돈이자 봉림대군의 장인이었다. ‘외아들 장선징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에 그의 처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어 와 지금은 친정 부모 집에 가 있습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주소서.’ - 인조 16년 3월 11일 한 사람쯤이야 ‘그렇게 하세요’ 하면 그만이었으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의 여론은 현실론과 이상론으로 나뉘었다. 좌의정 최명길은 반대했다. 첫째는 이혼을 금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못..

하나오카 사건

하나오카 사건 하나오카 이야기 ‘하나오카’. 훗카이도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키타현에 속한 지역으로, 광산이 있었다. 광산은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서 훨씬 더 바빠졌다. 거기에는 세 부류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일본의 하급 노동자들, 징용 당해 온 조선인들, 그리고 중국군을 비롯한 포로들. 징용자 중 한명이었던 김일수 씨는 후일 (경상도에서) 일본으로 끌려올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일본군은 군용 차량을 마을 어귀에 세운 뒤 남자가 있는 집이면 마구 들어가 끌어냈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수갑을 채웠다. 그래도 반항하면 총을 들이댔다. “우리 집에 쳐들어 온 건 새벽 2시경... 어머니가 울며 부탁하는데도 강제로 연행되었어요.” 그들은 수직 갱도로 내려가 작업을 했다...

기득권자

기득권자 후투 VS 투치,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 기득권. 한번 쥐면 놓기 싫다. 누군가 빼앗으려고 하면 목숨을 걸고 버틴다. 원래 없던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가진 이들에게는 죽었으면 죽었지 빼앗기기 싫은 무엇이다. 기득권 중의 최고 기득권은 혈통이 아닐까. 혈통은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의 혈통’이 어떤 기득권을 보장한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1863년, 영국의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가 흥미진진한 가설을 발표했다. 아프리카 흑인 중에 백인의 피가 섞인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가 보기에) 에디오피아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 유난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50여년 르완다에 불어 닥칠 핏빛 역사의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을 한..

변화

변화 그가 배를 먹지 않은 이유 ‘변화’.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다. “무조건 변화하라”고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변화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은 겉은 외물을 따라 변화했으나 속은 변하지 않았다.’ - , 외편, 지북유(知北遊) 허형(許衡)은 원 나라의 쿠빌라이에게 등용돼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기에 원 나라의 위징(魏徵)으로 불렸다. - 위징은 당태종이 자신의 잘잘못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을 정도로 명신이었다. 허형은 젊은 시절 몽골군을 피해 피난을 간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배나무 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배를 따 먹었지만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을..

강정호

강정호 강정호와 주몽의 공통점 야구팬들은 오전이 즐겁다. 며칠이 멀다하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이 안타, 홈런 소식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차붐(차범근)’ 시절처럼 문자와 정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특히 강정호의 홈런 한방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오전을 활기차게 만드는지 모른다. - 어느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월요일 오전에 11시까지 얼굴에 미소를 띠지 않는다고 하는데, 강정호가 안타나 홈런을 때린 날은 9시부터 웃을 듯하다. 일반적으로 공을 잘 때리는 선수들은 ‘잘 보는’ 데서 시작한다. 미국의 홈런왕 베이비 루스가 그랬다. 그는 레코드판의 바늘을 집중해 쳐다보면서 타격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서운 눈은 활쏘기와도 연관이 있다. 탕문편(湯問篇)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재

인재 “인재를 쫓아내야 우리가 산다” 정치인들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 혹은 자기 가문의 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것일까. ‘백성’들이 늘 궁금해 하는 점이다. 공자가 초나라에 머문 적이 있었다. 초나라의 소왕(召王)은 공자와 대화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에게 땅을 주고 초나라에 정착시키고 싶어했다. “아니 되옵니다!” 권력에 민감한 신하 하나가 반대하고 나섰다. 재상으로 있던 자서(子西)였다. 그는 공자에게 배운 자공과 안회, 재여 같은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왕의 신하 중에 그들을 능가할 자들이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물론 답은 “없다.”였다. 이어 말했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은 각각 풍성(豊成)과 호(鎬)에서 백리 남짓한 땅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천하를 얻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