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그가 배를 먹지 않은 이유
‘변화’.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다. “무조건 변화하라”고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변화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은 겉은 외물을 따라 변화했으나 속은 변하지 않았다.’
- <장자>, 외편, 지북유(知北遊)
허형(許衡)은 원 나라의 쿠빌라이에게 등용돼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기에 원 나라의 위징(魏徵)으로 불렸다. - 위징은 당태종이 자신의 잘잘못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을 정도로 명신이었다.
허형은 젊은 시절 몽골군을 피해 피난을 간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배나무 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배를 따 먹었지만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왜 안 먹는지 물었다.
“목은 마르지만 내 것이 아니니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기차 찬다는 듯이 말했다.
“전란 중에 나무의 주인이 있겠는가?”
허형은 고리타분한 답을 내놓는다.
“길가의 배나무는 주인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주인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나이든 부모님이나 어린 자식이 있었다면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젊고 튼튼한 본인의 목을 축이는 것이 꺼림칙했을 뿐이었으리라.
변화의 시대다. 변화를 약삭빠른 처세나 무조건 하고 새로운 것을 찾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외형은 끊임없이 변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상식이 있기 마련이고, 그 상식의 기반이 튼튼해야 세상이 굳건하게 설 수 있다. 변화의 시대일수록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상식’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