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개성주의
“행복한 삶이란 자기 개성에 맞게 사는 것을 뜻한다.”
- 세네카
우리 시대 ‘개성’이 얼마나 살아 있을까. 어려서 배우는 공부부터 삶의 습관이나 취미까지, ‘개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교통과 통신이 덜 발달한 시기에는 달랐을 것이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들이 살고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요즘은 아무리 오지로 가더라도 ‘여행’일 뿐이지만.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개성을 아는 것을 행복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 그 시기에도 ‘자신’을 모르고 무턱대고 행복해지려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모든 사람들이 왕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온갖 헛된 시도를 한다.’
설사 그런 시도가 성공하더라도 끝은 씁쓸하다. 쇼펜하우어의 해석에 따르면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며 획득한 것은 그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가져다주지 않고, 그저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간단하다.
‘인간이 후회하고 고통을 맛보는 것은 그가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것 중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알맞고 자신만이 이룰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만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20대들은 불행을 강요받는 모양새다. 삶이 거의 비슷하다. 취업을 하려고 스펙을 쌓는 것이 일상인데, 그 스펙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개성은 취직 후에나 발휘할 기회를 얻겠지만, 그때는 이미 타성에 젖어서 ‘개성’ 따윈 싹까지 잘려버리고 난 뒷일 지도 모른다.
완고한 편견과 현실적인 억압들, 이 모든 것들이 자아를 향하는 눈을 가린다. 우리는 언제 개성적인 ‘나’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참고>
쇼펜하우어, 김상문 엮음, <내 행복은 어디에?>, 2014,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