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102

호구조사

호구조사 길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울부짖었다 1888년 지금의 영덕 지역이 발칵 뒤집어졌다. 호구분쟁이 터졌다. 호적업무를 맡은 관리가 뇌물을 먹고 호구 수를 조정하는 등 비리를 저질렀고, 이에 지역 양반들이 크게 반발했다. 사건의 발단은 최종 책임자의 부재였다. 1887년 겨울에서 1888년 봄 사이에 기존의 부사가 떠난 후 신임 부사가 도착하기까지 3달이라는 공백기가 생겼다. 호적 담당 아전은 아무런 통제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휘둘렀다. 자기 마음대로 호수를 조정했다. 나름대로 원칙도 정했던 모양이다. ‘수십 냥에 1호’, ‘40~50냥에 2호’를 줄여주었다. 어떤 마을을 300~400냥씩 헌납하기도 했다. 돈을 안 내면? 보복이 돌아갔다. 죽은 사람을 끼워 넣는 등의 수법으로 3호에서 7..

전통사회

전통사회 일제강점, 양반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일제가 한반도에 마수를 뻗친 이후 전통문화가 철저하게 짓밟혔다. -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양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간 몇몇 가문을 생각하면 철저히 외면당하고 붕괴되었을 것 같다. 전남 장흥 지역의 전통 문화와 양반 세력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양반 세력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더 힘이 강화된 느낌까지 든다. 전통 사회에서 양반들이 지방에서 차지하는 직즙 중에 향교 교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장흥에서 내로라는 성씨가 교임 자리에서 차지한 비율은 50%이상이었다. 19세기만 해도 세가 약한 가문에서 조금씩 치고 올라오는 모양새였으나 강점 이후 30년대까지 오히려 쟁쟁한 가문의 독점이 강해졌다. ‘전통적 엘리트’..

콜럼버스

콜럼버스 “계산이 잘못된 것 같은데?” “전혀!” “자네, 세상 크기를 잘못 안 것 같은데.” 어느 탐험가가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정확히 뭘 착각했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 남자는 거리 계산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지구의 크기를 스스로 계산했다. 물론 참고자료도 있었다. 9세기 페르시아 천문학가 알파르가니의 연구 자료였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와 지구의 크기를 계산했다. 그가 확신의 지구의 크기는 실제의 4/3밖에 되지 않았다. 원인은 ‘마일’이었다. 알파르가니가 쓴 아랍 마일 대신 로마식 마일로 계산했다. 로마는 1,500미터 아랍은 2,000미터였다. 500미터의 차이가 있었다. 일본..

좋은글 중에서

좋은글 중에서 미국인들이 쟁기질만 하면 비가 온다고 믿은 이유 체험은 힘을 가진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는 하지만, 잘못 보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미국 농부들은 ‘쟁기질을 하면 비가 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체험이 만든 신념이었다. 당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였고, 농부들은 쟁기질을 하다가 빗방울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이 체험은 우연이라는 의심을 씻어버릴 만큼 강력했고 쟁기질과 비에 대한 미신은 믿음으로 굳어졌다. 20세기 초, 미국은 농민들의 서부 정착과 농업을 장려했다. 그 시절 이미 농사 짓기 좋은 땅은 모두 경작지가 되어 있었으나 미국 정부는 다양한 혜택을 부여했다. 때마침 호시절이 찾아왔다. 어쩌면 ‘쟁기질에 호응해 비를..

경험적 자료

경험적 자료 생각 없이 살면서 생각 있다고 착각하는 이유 세상이 복잡하다. 중요한 것 외에는 간단하게 보여주길 원한다. 깊이 고민한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게 짧은 혹은 깊지 않은 생각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대중’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이런 현상은 학문적으로 설명한 사람이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다. 이들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 경험과 직관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간단하게 ‘경험적 지식’에 의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들은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가 ‘대표성 휴리스틱’이다. 국가나 인종 지역에 따라서 ‘그러려니’ 하고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표현이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가진 고정 관념 등이 그렇다. 어느 지역, 특정 인종에 대한 ..

같은 공간 다른 시간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신천과 대구천 「“저 앞이 대구천이에요?” 멈춰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조선인은 신천이라고 해. 대구천이라고는 하지 않는 모양이야.”」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1927년 4월 20일 ~ )는 일제강점기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그는 대구에서의 추억을 담은 몇 권을 책을 냈다. 그 책의 한 대목이다. 일본인들은 신천을 ‘대구천’이라고 부르고 대구민들은 ‘신천’이라는 원래의 명칭을 바꾸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변함없는 부분은 있었다. 강점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구는 서울, 평양과 함께 상업의 중심지였다. 약령시의 경우 청나라와 에도시대(1603~1867)의 일본과도 교역을 했다. 대마도를 통한 교역이었다. 이런 상업 중심지로서의 ..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힘 황제가 탐낸 가장 귀한 선물 “왕이시여, 저는 오랜 기간 여행으로 지쳤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6개월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더이다. 불쌍하여 여겨 주소서!” 1349년 11월, 모로코의 왕궁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40대 중반인 이 사내는 오랜 기간 외국을 여행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길이었다. “그대의 여정이 어떠했는가.” 왕이 호기심을 보이자 그는 기민하게 지금껏 다녀본 왕궁과 도시, 군주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왕 앞에서 섰던 사내의 이름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 ~ 1368). 그는 왕의 후원을 원했다. 20년 넘게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까지 여행하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얻고, 다양한 선물을 얻기도 했지만 고향에 본사를 둔 대단한 사업가는 아니었다. 도움이..

타인의 해석

타인의 해석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망상 무조건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서비스 산업이 발달한 때문이다. 회사에는 직원을 딱 부류로 나눌 기세다. 사람 잘 사귀는 사람과 못 사귀는 사람. 사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때도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사이가 어그러진 것 자체를 탓한다. 이런 분위기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그저 몇 년 상간에 나타난 일이 아니다. ‘타인의 견해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두는 현상은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망상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당시는 서비스 산업 시대도, 스마트폰이 개개인에게 보급된 시대도 아니지만 그때도 타인들의 시선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염세적인 철학자..

일기장

일기장 ‘옛날’ 일기 ‘옛날’ 일기를 본다. 이오덕 선생이 교사 시절 쓴 글이다. ‘옛날’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목소리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 중에 지금 읽어도 씁쓸해지는 신랄한 교육 비평이 있다. ‘앞으로 학예회가 있고, 운동회가 있고, 군 예술제가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교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행사에 나가서 상을 타야 한다고 선생들을 독려하고, 선생들도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열성을 발휘하고, 그보다도 낙선될 경우 교장 영강님이 터뜨릴 분노가 무서워서도 온 정신을 쏟고 있다. 모두가 거룩한 애교심으로 한마음이 된 것같이 보일 때도 가끔 있다. 그러나 생활과 교육은 엉망이 되고 난장판이 되었다.’ - 1964년 4월 22일 일기 가르칠 맛이 안 나겠다 싶다. 행..

신뢰성

신뢰성 틸링해스트의 비행기 인간의 내면. 가장 치명적인 거짓말이 빚어지는 공간이다. 191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비행성 공황 사태’도 그런 류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일종의 집단 확신에 사로잡혔다. 편집인 프랜시스 허스트는 이란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며칠도 안 되어 ‘데일리 메일’은 이렇게 단언했다. ‘아마도 독일로 추정되는 어느 외국 열강의 비행선들이 이 나라 하늘은 정기적, 계획적으로 비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된 사실이다.’” ‘의문의 여지 없다’는 멘트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당시 독일은 한 대의 비행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영국에 간 적이 없었다.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판단은 ‘수천 명이 목격했다는 하늘의 불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