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틸링해스트의 비행기
인간의 내면. 가장 치명적인 거짓말이 빚어지는 공간이다. 191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비행성 공황 사태’도 그런 류의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일종의 집단 확신에 사로잡혔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인 프랜시스 허스트는 <여섯 가지 공황>이란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며칠도 안 되어 ‘데일리 메일’은 이렇게 단언했다. ‘아마도 독일로 추정되는 어느 외국 열강의 비행선들이 이 나라 하늘은 정기적, 계획적으로 비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된 사실이다.’”
‘의문의 여지 없다’는 멘트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당시 독일은 한 대의 비행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영국에 간 적이 없었다.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판단은 ‘수천 명이 목격했다는 하늘의 불빛은 허구’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설마 그랬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비슷하면서 그 과정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가 있다. 이 경우는 적극적인 거짓말쟁이가 등장한다. 1909년 윌리스 틸링해스트라는 사람이 <보스턴 헤럴드>에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세계 최초의 안정적인 공기역학적 비행기를 발명했다.”
그는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날았다고 밝혔다. 출발지는 매사추세츠주 우스터, 뉴욕과 보스턴를 거쳐 500킬로미터를 비행했다고 주장했다. 의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 주변을 돌았는다는데 왜 아무도 본 사람이 없죠?” 틸링해스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밤에 비행했기 때문입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첫 목격자는 보스턴항 위로 발광체가 날아가는 것을 봤다는 남자였다. <보스턴 글로브>은 이 목격담을 1면에 실었다.
‘미상의 비행선, 밤중에 하늘을 날다.’
바로 다음 날 정정보도가 실렸다. 그러나 이번엔 1면이 아니라 12면이었다. 그가 본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배였다는 것이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었다. 정정보도에도 불구하고 1면 기사의 영향은 엄청났다 12월22일 무렵 목격자가 2,000명이 넘어갔다. 그 다음 날엔 우스터 주민 5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비행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 까닭이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 속에 비행체 목격 소문은 점점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모양을 봤다.” “조종사 두 명이 앉아 있는 것까지 봤다.”
틸링해스트는 존재했을까? 아쉽게도 목격담 외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다. 틸링해스트가 만들었다는 비행기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어느 신문에 실렸다. 기사는 이렇게 단언했다.
‘매사추세츠를 발칵 뒤집은, 헛것을 보는 전염병이 어제 오후 우리 지역을 강타했다.’
틸링해스트의 비행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다. 진실만큼 거짓도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틸링해스트는 존재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비행체는 그래도 낫다. 사람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금융이나 주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 이상의 파급력을 가지기도 한다. 혹은 실제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값이 매겨지기도 한다. 틸링해스트의 비행기는 아직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참고>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홍한결 옮김, 윌북, 2021년
'생각이 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해석 (0) | 2021.05.10 |
---|---|
일기장 (0) | 2021.05.08 |
좋은집 만들기 (0) | 2021.04.29 |
물질 만능주의 해결방안 (0) | 2021.04.28 |
한일 청구권 (0) | 2021.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