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옛날’ 일기
‘옛날’ 일기를 본다. 이오덕 선생이 교사 시절 쓴 글이다.
‘옛날’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목소리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 중에 지금 읽어도 씁쓸해지는 신랄한 교육 비평이 있다.
‘앞으로 학예회가 있고, 운동회가 있고, 군 예술제가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교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행사에 나가서 상을 타야 한다고 선생들을 독려하고, 선생들도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열성을 발휘하고, 그보다도 낙선될 경우 교장 영강님이 터뜨릴 분노가 무서워서도 온 정신을 쏟고 있다. 모두가 거룩한 애교심으로 한마음이 된 것같이 보일 때도 가끔 있다. 그러나 생활과 교육은 엉망이 되고 난장판이 되었다.’ - 1964년 4월 22일 일기
가르칠 맛이 안 나겠다 싶다. 행사에만 쫓겨 다니면서 정작 공부나 생활 교육은 뒷전이었으니 말이다.
요즘도 알맹이가 빠졌기는 마찬가지다. 입시에만 매달리느라 깊이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진짜 공부는 실종되었다. 앵무새처럼 같은 내용만 반복해야 하는 교사들로서는 학교가 ‘난장판’ 이하라고 생각할 때가 많을 것이다.
다른 일기에서는 더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이 담겼다.
‘학교 숙직실에 땔 나무는 없다고 하면서 학교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는 모두 교장 사택에 가져갔다. 작년 겨울에는 그토록 나무를 아끼라고 야단치더니, 결국 그 많은 나무를 반쯤도 때지 못하면서 떨면서 겨울을 보내고는, 남은 나무를 봄내 여름내 교장 사택에 가져가서 잘 땠다. 이런 영감이 살아 있는 한 학교고 교육이고 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우윳가루는 자루째로 여선생들 집으로 가져가서, 지금은 강냉이가루로만 죽을 쑤어 주고 있다. 교장부터 그 꼴이니 여선생들이 따라가는 것이다.’
- 1963년 9월 24일
다른 일기에는 가정방문을 하면서 ‘선물’을 받는 교사들이 모습이 등장한다.
교육 같은 교육도 없고 교장부터 사리사욕만 챙기는 학교의 속내를 보면서 글쓴이는 적잖이 속상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다를까, 고민해본다.
얼마 전 교사들이 명퇴 러시라는 기사를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법이 바뀌어 연금 수령액이 20% 삭감될 것이란 소문 때문에 서둘러 사표를 쓰는 때문이라고 한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오덕 선생이 증언한 교육계의 모습이 지금도 여전한 느낌이다. 교외 행사를 잘 치러서 학교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혈안된 과거나, 그저 상부 학교에 올라가서 성적을 잘 내 도록만 해주면 그만인 요즘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돈이란 것이 한겨울 땔감처럼 우리 삶에 얼마나 요긴한지 모르겠지만 제주시에서는 예산 부족 사태까지 일으킬 정도라니, 조금 오버한다 싶다.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누구 탓을 하기 힘들다. 멀쩡한 사람도 제도와 주변 분위기가 한쪽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쏠리게 마련이다.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참고>
이오덕, <이오덕 일기1>, 양철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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