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황제가 탐낸 가장 귀한 선물
“왕이시여, 저는 오랜 기간 여행으로 지쳤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6개월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더이다. 불쌍하여 여겨 주소서!”
1349년 11월, 모로코의 왕궁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40대 중반인 이 사내는 오랜 기간 외국을 여행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길이었다.
“그대의 여정이 어떠했는가.”
왕이 호기심을 보이자 그는 기민하게 지금껏 다녀본 왕궁과 도시, 군주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왕 앞에서 섰던 사내의 이름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 ~ 1368). 그는 왕의 후원을 원했다. 20년 넘게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까지 여행하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얻고, 다양한 선물을 얻기도 했지만 고향에 본사를 둔 대단한 사업가는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왕은 후원을 약속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왕이 원하는 것이 있었다. 왕과 비교할 때는 빈털터리가 다름없는 여행가였지만, 왕은 그것을 몹시 탐냈다.
“자서전을 쓰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
왕이 원한 것은 ‘이야기’였다. 온갖 정보와 다양한 체험이 녹아든 흥미진진한 스토리.
이븐 바투타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당장 자서전 작업에 들어갔다. 그의 자서전 제목은 <여행기>다.
어느 드라마에서 전쟁터로 가겠다는 젊은이에게 의사(혹은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전쟁터에 갔다 온 많은 젊은이들이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네 눈빛에서 아무런 열정도, 야망도 발견할 수 없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성공이든 실패든, 기쁜 것이든 슬픈 내용이든, ‘나’를 ‘나’로 인식시키는 것은 나의 이야기다.
왜 이야기일까. 타인이 가진 것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무언가를 생각해보면 쉽다. 그가 먹는 음식이나 타는 차, 사는 집은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중간에 끊어버리면’ 화가 난다. 잠이 안 올 지경이다.
황제도 이야기의 ‘맛’을 알았다. 산해진미 같은 이야기를 맛보려고 이븐 바투타에게 “이야기만 들려주면”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이들이 용기나 호기심, 열정, 정의감, 의미, 적절한 휴식 대신 다른 무언가를 쫓다가 결국 이야기 가난뱅이로 전락한다. 과정이 재미없으면 결론은 의미가 없다. -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여도.
참고>
스튜어트 고든, 구하원 옮김,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 까치, 2010년, 119쪽~
'생각이 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험적 자료 (0) | 2021.09.11 |
---|---|
같은 공간 다른 시간 (0) | 2021.07.18 |
타인의 해석 (0) | 2021.05.10 |
일기장 (0) | 2021.05.08 |
신뢰성 (0) | 2021.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