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university)은 학생들의 무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학교는 교과서, 교사, 그리고 학생으로 구성된다. 학교를 구성하는 이 요소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가르치는 내용이 너무 부실하면 학교 대접을 못 받고, 교사와 학생도 권리와 권위 문제를 놓고 숱한 갈등을 겪었다.
대학교의 탄생은 1100에서 1200년 사이에 가능해졌다. 이 시기에 ‘교과서’가 나왔다. 유럽이 암흑기를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지식들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스페인의 아랍계 학자들을 손을 거쳐 되돌아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천동설을 완성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의 저작들을 비롯해 그리스의 의사들, 새로운 산술, 로마의 법전들이 교사와 학생을 부르고 있었다. 지식의 양이 방대하고 깊어지면서 성당 부속학교와 수도원 학교라는 ‘작은 그릇’으로는 당대의 지식들을 다 담아내기 힘들어졌다.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학생 무리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길드의 형태로 조직을 만들었다. 이것이 대학의 시작이었다. 대학(university)이라는 단어는 학문의 세계(universe)나 학문의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의 집단을 뜻하는 말에 불과했다.
이들이 ‘대학’을 형성한 이유는 생활비 때문이었다. 원주민들이 몰려온 학생들에게 비싼 방세와 터무니없는 생필품 가격을 요구할 경우 이를 놓고 교섭할 ‘단체’가 필요했다. 이들은 방세를 조정하지 않을 경우 다른 지역으로 단체 이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방식으로 주민들과 협상했다. - 당시는 ‘대학 건물’이 없어서 이런 집단 이주도 가능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또 다른 ‘적’은 교수들이었다. 그들은 ‘수업료’를 받아가는 교수들에게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했다. 그들은 교수들에게 행동 강령을 전달했다. 1317년, 교수들에게 이런 규정이 통보됐다.
첫째, 교수는 단 하루도 결석해서는 안 된다.
둘째, 도시 밖으로 나갈 때도 다시 돌아온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그리고 나갈 때는 ‘예치금’을 내야 한다!)
셋째, 만일 수강 신청 인원이 다섯 명 이하면 그는 벌금을 내야 한다.
넷째, 종소리가 나면 수업을 시작해서 마치는 종이 울린 후 1분 내로 수업을 끝내야 한다.
다섯째, 교제에서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거나 어려운 내용을 뒤로 미루면 안 된다.
여섯째 매년 학기마다 정해진 분량을 계획대로 가르쳐야 한다.
이를 보다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해 학생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학문 공동체를 만들고 그 집단을 대표하는 ‘총장(rector)’을 뽑았다.
최초의 모습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관습화되고 전통을 따른 권리를 주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모습은 현재의 관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더러 보다 합리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참고>
찰스 호머 해스킨스, <대학의 탄생>, 연암서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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