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눈앞을 보지 못하면서 천리 밖을 보려는 것 같다’
“중국의 치란과 흥망은 어제 일처럼 밝은데, 동국(우리나라)의 일은 아득히 문자가 없던 시대의 일처럼 어둡다. 눈앞을 보지 못하면서 천리 밖을 보려는 것 같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나온 것이 1618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문신 권문해가 쓴 ‘대동운부군옥’은 1589년에 완성됐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백과사전이 출산되기 170년 전의 일이었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이자 류성룡, 김성일 등과 동문이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 송나라 음시부의 저작인 ‘운부군옥’의 체제를 가져와 책을 저술했다. 표제어 2만 성어에 인명 1700조목으로 정리해 20권 20책으로 압축,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냈다. 책에는 사기, 한서 등의 중국 서적 15종과, 삼국유사와 계원필경 등 174종이 인용됐다. 이중에서 40여종은 현재 전해지지 못했다.
그는 서문에서 오로지 중국의 일만 알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는 관심도 없는 세태를 비판했다.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판할 것이 없지만, 중국 이상의 세계는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고 지역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은 지적할 만하다.
임진왜란 이후 지역마다 ‘읍지’의 간행이 활발해진 것도 이런 선비들의 비판 의식의 결과였을까. 중앙은 더더욱 중국에 집착했지만 지역은 자기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구석은 있다. 일본이 삼국 중 유독 신라를 폄훼한 것처럼,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서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거기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도) ‘언젠가 떠나야 할 곳’쯤으로 인식된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눈앞을 보지 못하면서 천리 밖을 보려는 것 같다.’
지역과 수도권을 비교해도 같은 말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
김구철, <선비문화를 찾아서>, 오색필통,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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