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성장률
“산업혁명? 운이 좋았던 것”
“현재 시 주석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역동성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 걸로 보인다.”
중국이 자국 빅테크 기업의 해외증시 상장을 규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향후 45조달러(약 5경1556조5000억원)의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 경제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인데,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면 좋겠지만 정치적 후진성을 놓고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해 한해, 혹은 하루 하루 갈림길에 서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바로 중국의 형편이다.
세계가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롤러코스트를 탄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역사다. 유럽에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1700년대) 중국과 유럽은 세계총생산에서 22.3%와 24.9%를 차지했다. 중국 혼자 유럽과 맞먹는 수준을 유지했다.
170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가 찾아왔다. 1700년부터 1820년(명청시대) 사이 중국의 1인당 GDP 성장률 제로였다. 1820년에 1950년에는 마이너스 10%를 기록했다. 유럽은 꾸준히 성장했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억울한 부분이 있다. 명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양쯔강 이남 유역을 뜻하는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해 인구가 급증했다. 명 말 1억5,000만이던 인구는 1850년대 4억3,000만 명으로 늘었다. 번영의 시대였다. 해외무역이 확대되었고 은의 유일이 늘면서 화폐 경제도 활발해졌다. 인구가 늘어난 배경이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18세기의 성장요인이 19세기에는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었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당송 시대에 소농경제가 발전하고 토지생산성이 높아졌지만 이후에 늘어난 인구 때문에 이 모든 발전과 성과가 상쇄되어버린 것이었다. 명청 시대 더 이상의 과학적 발전(농업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에 인구는 ‘과밀화’ 현상에 직면한 것이었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농촌의 상업화와 도시화는 15세기에 이미 끝났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1600년 이후 1820년까지 1인당 GDP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 (반면, 일본의 경우 산아율을 억제해 인구압에 따른 체제 위기를 넘겼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강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남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중국’은 상업의 발달이나 성장의 징후가 거의 없었다. 근대 이후 상하이를 비롯해 몇몇 도시만 성장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중국의 경제 발전은 중국 지도 전체를 펼쳐놓고 보면 별 의미가 없다.
19세기 들어 유럽은 급변했다. ‘대분기’의 시대였다. 아시아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는 동안 유럽은 급격한 속도로 치고 나갔다.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서유럽이 승기를 잡은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포메란츠와 리보중이라는 학자는 당송부터 청대까지 농업생산성이 증가했다고 본다. 이들은 유럽이 대분기에서 치고 올라간 것도 사회경제적 시스템이나 제도 등 내부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석탄이나 신대륙 발견 같은 우연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봤다. 리보중은 강남 지역에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받았다면 강남 지역도 스스로 근대 공업화를 이룩했을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시 주석은 아마도 자신에게 유리한 식으로 경제와 사회를 해석할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해석해도 이미 결론이 나버린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해석은 미래를 바꾼다. 잘못 해석하면 그 폐해를 미래에서 갚아야 한다.
표트르 팔친스키(1875~1929)는 번영하는 소련을 향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지나치게 규모 지향적이며 노동자의 인권과 삶을 도외시한 지속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중국은 어떻까? 중국 스스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중국은 다시 롤러코스트를 탈 수밖에 없다.
참고>
미야지마 히로시 외 지음, <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 너머북스,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