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
‘동백아가씨’... 왜색 시비가 아이러니한 이유
쉽게 끼어들기 힘든 논란이 있다. 친일 혹은 일본과 관련된 논란이다. 합리적인 분석보다는 감정적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나름 정확한 판단을 한답시고 논리적으로 파헤치다 보면 어느 사이 ‘민족반역자’가 되어 있기 일쑤다.
‘동백아가씨’ 논란도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사안이었다. 왜색 혹은 친일 논란이 일자 어느 누구도 여기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그랬다. - 1960년대 정치권에서!
‘동백아가씨’의 흥행은 폭발적이었다. 1960년대 여공들과 여급들의 애환을 달란 노래라고 알려져 있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 ‘국민 가요’였다. 대통령(박정희)의 애창곡이 ‘짝사랑’, ‘황성옛터’, 그리고 ‘동백아가씨’였다. 1965년 1월8일 경향시문에는 정치인들의 ‘동백아가씨’ 사람이 드러난 일화를 소개했다. 공화당 비주류계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 ‘동백아가씨’ 떼창이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김종필 의원에게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밤이...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켜서’ 하는 가사가 우리의 마음”이라는 말을 전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요평론가 이백천은 악단과 함께 서울대 의과대학 대강당에 갔다가 600여명의 의대생이 동백아가씨를 합창하는 장관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왜색 논란’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심지어 정치권이 ‘동백아가씨’를 탄압했다는 오랜 혐의까지 입었으나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왜색 논란이 정치권에서 나왔거나 이를 추인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오히려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이 뭐 할 일이 없어서 노래 한 곡 금지하는 데 관여한단 말인가”고 항변했다.
“다른 레코드회사들의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했을 것.”
이미자의 해석이다. 왜색 시비는 소위 음악 평론가들, 서양 음악에 심취한 방송 관계자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구체적인 시작점에 대한 증언은 두 가지다. 소위 포크음악의 산실이었던 세시봉에 초대받은 봉봉사중창단이 ‘동백아가씨’를 부른 것이 발단이 되어 왜색시비가 기사화되기 시작했다는 것. 또 하나는 ‘한국경음악평론가협회’ 1대 회장이었던 황문평이 왜색 가요 시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시작은 기사와 평론이었다.
그들은 왜 동백아가씨를 왜색 가요라고 했을까. 경음악평론가 서경술은 일본 가요의 특징인 미야코부시와 이나카부시의 음계가 소외 왜색 가요(목포의 눈물 등)에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 특유의 짜는 듯한 소리’ 역시 왜색이라고 했다. 음악평론가 이영미는 ‘라시도미파라는 독특한 5음계가 일본색’이라고 정의했다.
일본인들은 이 왜색 시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본 저작권협회 회장을 지낸 핫토리 료이치(1907-199)은 동백아가씨에 대해 ‘멜로디가 엔카의 흐름과 다르다’고 했고 ‘한국에서 왜색이라고 하는 트로트는 일본의 것도 한국의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엔카의 정의를 따라가 보면 우선 엔카라는 용어가 탄생한 시기가 뜻밖이다. 1960년대였다. 이전에는 유행가, 가요곡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국가 정체성 정립을 위해 엔카를 전통음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엔카는 1920년대 서양 음악의 장르를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형식일 뿐 일본 전통 음악과는 달랐다. 이른바, 만들어진 전통인 셈이다. 이를테면, 엔카의 ‘요나누키 음계’(5음계)는 한국을 비롯해 서양 민요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일본 유행가의 5음 구성은 우리나라 전통 5음(궁상각치우)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동양화한 서양 음악이 조선인들에게도 통한 이유였다. 깊게 들여다보면 엔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동백아가씨’를 특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노래가 동양정서를 담고 있긴 했지만 일본 평론가의 말처럼 엔카의 흐름과 비슷하지도 않았다. 사실 트로트는 1950년대 이미 팝과 섞이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트로트 곡 상당수가 5음계의 흔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동백아가씨는 왜색 시비가 일기 전 오히려 민요에 가까운 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엔카와의 공통점이란 아시아인들에게 친숙했고, 엔카 전문가마저 엔카와 다른 흐름이라는 지적을 수용하자면 한국적인 개성이 강렬한 곡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도 트로트를 왜색 가요라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70여년 전부터 전형적인 서양 음악의 톤을 수용했고 지금은 5음계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렸다. 무엇을 트로트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음악인의 말처럼 꺾고 흔드는 창법, 악긴 편성, 음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져 트로트답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는 엔카 혹은 왜색 시비에 가려져 트로트라고 부르는 장르의 진짜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일본과 상관없이 현재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음악이라고 보고 트로트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설집이 필요해 보인다.
어떤 면에서 동백아가씨의 왜식 시비 자체가 친일적인 논란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인들도 그저 유행가라고 부르는 류의 노래들을 두고 마치 상당히 일본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추켜세워줬으니 엔카라는 용어를 만들어 ‘일본의 영혼’ 운운했던 일본인들은 얼마나 우쭐했을까. 우리도 제대로 파악 못 한 일본적인 무언가가 그 시절 유행가에 담겨 있다고 확신하게 되지 않았을까. - 그들이 동백아가씨의 왜색 시비에 주목했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일 운동’이 오히려 친일적이었던 셈이다.
동백아가씨의 왜색 시비가 일어난 지 거의 반세기 만에 ‘일본인들도 어리둥절해 하는 이상한 논란’이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일본인도 엔카가 아니라고 하는 곡을 엔카라고 뒤집어씌운 건 억지 같아 보인다. 이런 류의 친일 시비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참고>
장유정 지음,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따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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