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우월감 양반이 뭐길래 며느리가 돌아왔다. 전쟁 통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임금에게 “아들 부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시아버지의 이름은 장유(1587-1638), 왕의 사돈이자 봉림대군의 장인이었다. ‘외아들 장선징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에 그의 처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어 와 지금은 친정 부모 집에 가 있습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주소서.’ - 인조 16년 3월 11일 한 사람쯤이야 ‘그렇게 하세요’ 하면 그만이었으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의 여론은 현실론과 이상론으로 나뉘었다. 좌의정 최명길은 반대했다. 첫째는 이혼을 금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