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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유통단지관리공단

김상출 유통단지관리공단 이사장 ‘급변하는 대구시, 유통단지가 밑거름 역할을 할 것’ 신공항 가속에 대구 대표 물류단지 종합유통단지 역할 커져 유통단지 1만 여명 소상공인 특수예외직으로 관리해야… “코로나19와 장기불황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올해로 종지부를 찍기를 바랍니다.” 김상출(65)유통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이 연말을 맞아 유통단지 경제상황과 미래에 대해 기대와 우려섞인 심정을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 간 지역경제는 물론 경기불황이 소상공인들의 목을 죄인데다 전통시장으로 분류되는 유통단지의 각종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통단지가 예산을 많이 받아 대구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 물류중심인 유통단지가 활성화되기 위한 최소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라며 ..

지역 이야기 2023.01.16

대구 디스크 치료 잘하는 곳요? 과연...

대구 디스크 치료 잘하는 곳요? 과연... 최신수술보다 더 좋은 치료는 정확한 검진 후 맞는 치료부터 해야 “디스크 퇴행성으로 인한 통증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는만큼 원인부터 정확하게 살펴야” 대구 수성구에 사는 강현규(49)씨는 디스크 치료를 위해 유명한 병원을 찾고 있다. 온라인 검색과 가장 크고 좋은 의료기기가 있는 곳을 찾고 있던 그는 안가본 병원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마침내 운전조차 못할 정도로 통증을 겪고 있다. 방우석 척탑병원 센터장은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다양한 원인과 디스크의 문제, 즉, 퇴행성, 외력에 의한 손상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하게 검진을 통해 증상의 발병 원인을 찾아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허리디스크로 인한 증상을 호소..

병원정보 2022.12.30

대구유통단지 전자상가 온열매트

대구유통단지 전자상가 온열매트 수성전자 대구광역시 북구 유통단지로 25 전자상가 3동 116호 ☎ 053-604-1996~7 010-3512-6292 ‘수성전자에서 따뜻함 가득 사가세요!’ 온열매트, 온수매트, 전기요, 전기스토브.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제품들이다. 이 모 든 제품을 취급하는 수성전자는 이외에도 믹서기, 드라이어, 전기오븐 등의 기구들도 있다. 그래서 이 곳은 사시사철 필요에 맞게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수성전자는 전자상가에 자리를 잡기 전에는 교동 에서 가게를 운영했었다. 자리는 옮겼지만 두터운 신뢰 덕에 그때 손님들이 여전히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그들의 만족도는 늘 최상이다. 갈수록 날이 추워지는 요즘, 따뜻한 전기장판 하나 필요하다면 ‘ 수성전자’를 들러보는 것이 ..

지역 이야기 2022.12.28

유통단지 매일프라자

유통단지 매일프라자 매일프라자 대구 북구 유통단지로 45 전자관 1층 239호 ☎ 053-604-3300 올해 겨울나기 준비는 매일프라자에서! 매일프라자는 건강가전, 여름가전, 소형가전, 골프용품 등 없는 게 없는 가게다. 그중 최근 가장 많 은 손님들이 찾는 건 단연 온열기구다. 온수매트, 전기매트, 온열좌욕기, 난로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 해 이 한곳만 방문하면 추운 겨울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다. 또한 질 좋은 신제품들을 다양하게 취 급하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손자, 손녀들이 조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구입하러 자주 방문하기도 한다. 김홍은 대표는 손님들에게 용도별로 적합한 제품을 ‘내가 쓴다’는 생각으로 추 천해 주고, 배달과 A/S 서비스까지 직접 제공해 탄탄한 고객층을 보유..

지역 이야기 2022.12.20

소담스퀘어 대구로 오세요

소담스퀘어 대구로 오세요 “그 문턱을 못 넘는 사람들이 제일 아쉬워요” 지난해 11월 문을 연 소담스퀘어는 오프라인 판매를 주로 했던 소상공인들의 디지털 전환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료로 지원해 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소상공인을 위한 디지털커머스 교육과 실습뿐 아니라 각종 교육아카데미와 스튜디오 대관을 진행하고 있다. 개관 1년 만에 소상공인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야 하는 필수코스가 됐지만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도성진(45) 대구MBC 디지털콘텐츠랩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진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소상공인확인서 등 서류절차가 까다로워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많아서다. 그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시면 좋을 텐데 지레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

지역 이야기 2022.12.14

대구유통단지 구경 오세요

대구유통단지 구경 오세요 “유통단지 발전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대구종합유통단지에는 7개의 공동관과 4개의 개별관 뿐 아니라 엑스코 등 유관기관들도 함께 있다. 이들은 유통단지에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유통단지의 볼거리, 즐길 거리를 더해준다. 먼저 엑스코는 2000년 12월에 완공된 지방 최초의 전시컨벤션센터로 지난 5월 세계가스총회을 유치하는 등 지역의 마이스 산업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엑스코 건너편에 위치한 펙스코는 신진 패션 디자이너와 젊은 창업가들의 꿈을 지원하는 대구 최초의 컨테이너 복합 패션 문화공간이고 대불공원 인근에 위치한 북구청소년회관에서는 청소년 관련 활동 외에 헬스, 수영 등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통단지관리공단 건물 2층..

지역 이야기 2022.12.01

인도인

인도인 인도인들의 이중생활 ‘이 도시는 국가라는 토양으로부터 난 나무처럼 성장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라는 조류 위의 거품처럼 떠도는 듯하다.’ - 타고르(1861-1941) 1931년 미얀마 양곤 인구의 절반이 인도인이었다. 중국, 유럽인도 있었지만 외국인 중 인도인의 수는 압도적이었다. 중국은 아시아 곳곳에서 밉상이었으나 미얀마에서만은 달랐다. 인도인에 비해 그 수가 적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인도인들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정책을 따라 양곤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식민지 백성이었으나 양곤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누렸다. 영국을 등에 업고 버마인(미얀마인)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타고르는 이런 모습에 너무도 깊은 실망을 느꼈다.) 미얀마가 독립했을 때 식민지 시기와..

믈라카

믈라카 국가란 무엇인가 개 한 마리가 쥐사슴을 쫓고 있었다. 자바쥐사슴의 크기는 다 커도 몸무게가 1kg 남짓. 개에게는 한입 거리밖에 안 됐다. 위기의 순간 쥐사슴이 돌연 폴짝 뛰어 개에게 덤벼들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개는 강에 빠져버렸다. “그래, 저거야!”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는 그 작은 쥐사슴처럼 쫓기고 있던 신세였다. ‘말레이 연대기’에 의하면 그는 수마트라 지역의 스리위자야 제국의 왕자였다. 자바의 마자파핫 왕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다 1402년 믈라카에 닿았다. 믈라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으나 그에게는 쥐사슴처럼 느껴졌다. 크기는 작았지만 지리적 이점이 컸다. 그는 믈라카에 왕국..

아내

아내 무산에 산다는 그녀 ‘아내는 옷에 묻은 술 자국이 많다며 화를 내셨네.’ 목은 이색(1328-1396)이 어느 해 겨울 남긴 기록이다. 과음했다지만 핑계는 있었다. 이름난 재상들과 높은 관리들과 무리를 이루어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을 참배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차례 술자리가 있었고 주거니 권하거니 ‘사회 생활’을 하느라 취하도록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이런 남편에게 화를 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지위에 명분도 있었지만 ‘무서운 아내’의 지청구는 피할 수 없었다. 이중민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아내의 치마를 바느질해서 꿰맸다. 이 일이 어쩌다 친구의 귀에 들어갔다. 그의 친구 이규보는 멋들어진 시를 지었다. (시는 ‘동국이상국집’ 5권에 남았다.) ‘눈빛처럼 곱네 하얀 비단 치마 밟아서..

베르타 폰 주트너

베르타 폰 주트너 하버드는 왜 그럴까? 베르타 폰 주트너(1843-1914).독일 출신으로 1905년 노벨평화상을 탔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유로화가 통용되기 전에 오스트리아의 가장 고액지폐인 1000쉴링에 얼굴이 실렸고, 현재는 2유로 주화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여성은 대한제국 혹은 조선에 중요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때가 특히 그랬다. 그 사건은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그 이유가 우리 생각과 사뭇 다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거의 유일한 아시아 정치인이었다. 이런 뛰어난 정치인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충격을 느끼고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영국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자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