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카
국가란 무엇인가
개 한 마리가 쥐사슴을 쫓고 있었다. 자바쥐사슴의 크기는 다 커도 몸무게가 1kg 남짓. 개에게는 한입 거리밖에 안 됐다. 위기의 순간 쥐사슴이 돌연 폴짝 뛰어 개에게 덤벼들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개는 강에 빠져버렸다.
“그래, 저거야!”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는 그 작은 쥐사슴처럼 쫓기고 있던 신세였다. ‘말레이 연대기’에 의하면 그는 수마트라 지역의 스리위자야 제국의 왕자였다. 자바의 마자파핫 왕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다 1402년 믈라카에 닿았다.
믈라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으나 그에게는 쥐사슴처럼 느껴졌다. 크기는 작았지만 지리적 이점이 컸다. 그는 믈라카에 왕국을 세웠다.
이듬해(1403년) 큰 손님이 찾아왔다. 중국의 사절단이 방문한 것이었다. 이어 그 유명한 환관 정화가 믈라카 왕국에 들어왔다. 그는 비석을 세월 믈라카를 국가로 인정했고, 믈라카는 기꺼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기로 했다. 믈라카는 중국과 인도, 아랍과 아프리카를 연결시키는 주요 교역로 역할을 하게 됐다.
믈라카는 특별한 특산물이나 자연 자원 없이도 지리적 이점 덕분에 해상교역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계절풍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어서 배들이 들어와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가지 기다렸다. 믈라카 한중간을 흐르는 강으로는 항구에 들어온 선박에서 내려보낸 작은 배들이 내륙으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교통이 편리했다. 게다가 14세 말 이래 동남아시아 지역이 정치적으로 안정된 까닭에 100년의 영화를 구가할 수 있었다. 믈라카의 왕들은 이웃 나라 공주들과 정략 결혼을 해 주변을 안정시키고, 공정한 정책으로 가깝고 먼 지역의 상인들과 산물이 몰려들도록 했다.
믈라카의 영화는 제국들의 침략으로 끝났다. 1511년 포르투갈의 전함 18척이 믈라카를 공격했고,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1795년에는 다시 영국이 믈라카의 지배권을 획득했다.
믈라카는 교통이 아주 유리했고 정치, 외교에서 비교적 뛰어났지만, 국가의 규모와 군대가 작고 제조업의 부재한 나라였다. 상업적으로 부흥하기는 쉬워도 복잡한 국제정세에서 국가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참고>
강희정 김종호 외,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사우,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