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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상식 그가 배를 먹지 않은 이유 ‘변화’.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다. “무조건 변화하라”고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변화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은 겉은 외물을 따라 변화했으나 속은 변하지 않았다.’ - , 외편, 지북유(知北遊) 허형(許衡)은 원 나라의 쿠빌라이에게 등용돼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기에 원 나라의 위징(魏徵)으로 불렸다. - 위징은 당태종이 자신의 잘잘못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을 정도로 명신이었다. 허형은 젊은 시절 몽골군을 피해 피난을 간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배나무 밭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배를 따 먹었지만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을..

이문건

이문건 대감집 여종 “내가 먼저 사랑했어요” 돌금. 여종의 이름이다. 16세기 사람이었던 이문건(1494-1567)의 집에서 일했던 여자 종이었다. 이문건 일가는 경북 성주에 유배와 있었다. 돌금은 이문건이 쓴 일기에 1546년부터 1563년까지 17년 동안 간간이 이름이 등장한다. 돌금은 충청도 보은에 있는 여비 삼월의 딸이었다. 돌금은 남동생이 셋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 혼인을 했고, 2년 후 남편과 함께 강전이 유배를 살고 있는 성주로 이주했다. 돌금은 한 성격하는 여자였던 듯하다. 그는 상전의 며느리를 우습게 보았다. “돌금이 며느리를 업신여겨 말을 거역하고 혹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거짓으로 꾸민다. 너무 화가 나 천택을 시켜 등 30대를 때리게 했다.”(1553년 9월 18일) “돌금이 ..

도덕적 우월감

도덕적 우월감 양반이 뭐길래 며느리가 돌아왔다. 전쟁 통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임금에게 “아들 부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시아버지의 이름은 장유(1587-1638), 왕의 사돈이자 봉림대군의 장인이었다. ‘외아들 장선징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에 그의 처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어 와 지금은 친정 부모 집에 가 있습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주소서.’ - 인조 16년 3월 11일 한 사람쯤이야 ‘그렇게 하세요’ 하면 그만이었으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의 여론은 현실론과 이상론으로 나뉘었다. 좌의정 최명길은 반대했다. 첫째는 이혼을 금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