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옛이야기 100가지
중화사상의 기원
‘중화사상’이 언뜻 위압적으로 느껴지지만, 기원을 살펴보면 측은한 마음이 인다.
우선 중원의 지배 세력을 알아보아야 한다. 진(秦) – 한 – 진(晉) - 수 – 당 – 송 – 원 – 명 – 청 – 중. 지금의 중국 땅에 세워진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 중 ‘한인’이 세운 통일 왕조는 진(秦)과 한, 진(晉), 그리고 명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오랑캐’의 지배를 받았다.
오랑캐의 세월이 ‘중화사상’을 잉태했다는 주장이 있다. 엉뚱한 말 같으나 찬찬히 들어보면 수긍이 간다.
‘중화사상’의 체계를 정립한 나라는 ‘송’이었다. 송 왕조의 건국자 조광윤은 터키계였다. 송 이전에 잠깐 역사를 남긴 후당 역시 터키계 왕조였다. 요직은 모두 터키인들이 차지했다. 조광윤의 경우 기마 장수로 이름이 높았고, 날뛰는 말을 잘 길들여서 타고 다녔다는 일화도 남겼다. 터키계 유목민 혈통다운 행적이었다.
조광윤 자신은 전한 명신 조광한의 후예이며 한인이라고 주장했다. 왜 그랬을까? 송 왕조의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한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국력도 그다지였다. 특히 거란 세력이 문제였다. 유목 부대를 상대하기에는 농경민 부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때 송은 아이디어를 냈다. 매년 오랑캐에게 엄청난 재물을 바치고 평화를 구걸한 것이었다. 이것이 송의 ‘문치주의’였다. 서쪽의 티베트인들에게도 동일한 정책을 펼쳤다.
평화는 얻었지만 자존심은 잃었다.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렇게 나온 대책이 ‘정신승리법’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이것이었다.
첫째, 우리는 절대 굽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문화인인 우리 한인이 미개한 야만인을 관대하고 품고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는 것은 공납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
셋째, 송 왕조는 오랑캐들과 형제 관계를 맺고 형으로서 아우를 두루 돕는다.
그렇게 중국은 그 세월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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