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일본 역사왜곡

프로시안 2021. 2. 10. 22:58

일본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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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부산



“국제사회에 홍보를 강화하라.”



“우리의 입장을 적극 알려라.”

 

 



독도, 센카쿠 열도 등을 문제삼을 때마다 일본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말이다. 국제적인 여론을 일본에게 유리하도록 해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생각인데, 사실 일본은 과거에 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해외홍보로 ‘한국’ 혹은 ‘조선’을 바보로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서 철수를 했지만 부산 부두는 돌려주지 않고 1876년 쓰시마섬(대마도)의 제후가 관리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드 팡주가 한국을 여행한 뒤 쓴 글에 담긴 내용이다. 영국 작가 앵거스 해밀튼은 ‘러일전쟁 당시 조선에 대한 보고서’에서 대마도 영주의 가신들이 오래 전에 만든 정착지가 부산이라고 하면서 전쟁 승리의 증거로 부산을 차지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독일 외교관 막스 폰 브란트도 ‘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에서 부산을 일본인 거주지로 묘사했다.



이 뜻밖의 기록이 어디서 나왔을까? 조선인에게서 나왔을 리는 없다. 외국인들이 스스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없다. 모두 일본의 ‘선전’의 영향이다.


 

 


우선 부산(혹은 초량왜관)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보면 대마도의 간청으로 열린 공간이었다. 통상은 허락했으나 부산 도성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못하게 했다. 왜관에 가두었다.



일본은 교묘한 역사적 왜곡과 함께 이 지역에 대한 근대적 해석으로 외국인들을 낚았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이렇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남부를 점령해 울산 부산 진주에 성을 쌓았다. 6년 동안 점령한 후 본국으로 철수했으나 부산은 개항 때까지 계속 일본 영토로 남겼다.



여기에 전근대적인 조치도 이런 거짓말이 먹히는데 한몫했다. 조선은 일본인 거주지를 구획지은 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고 상대하기도 귀찮은 존재가 일인들이었다. 그러나 근대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치외법권의 인정이나 다름없었다. 서구인들의 눈에 일본인 거주지가 점령지처럼 느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도 이런 왜곡이 그럴싸하게 먹히는데 일조했다. 영국의 언론인 ‘이코노미스트’는 조선을 이렇게 이야기했다(1909년 10월30일)



‘조선의 국정은 희망이 없는 혼란 상태이다. 정부는 부패했고, 국민들은 노력을 하고자 하는 자극이 전혀 없다. 조선의 화폐 시스템에서는 정직한 거래가 불가능하다. 또 국민이 부자가 되면 그 재산은 모두 기부라는 형식으로 강제적으로 국가에 몰수된다.’

 

 



결론을 읽으면 (한국인으로선) 눈물이 난다.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것이 조선인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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