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왜곡된 역사

프로시안 2023. 11. 27. 16:47

왜곡된 역사

 

전쟁의 기억, 왜곡된



“우리나라는 총 985나 침략을 당했습니다.”



역사, 실록, 문집, 야담 등에서 자료를 찾아서 계산하는 그런 통계가 나온다고 한다. ‘침략’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가까운 역사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일제의 강점, 미군에 의한 종전, 그리고 분단까지. 힘없이 끌려가기만 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985회의 참략이라는 말은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각을 넓혀 다른 나라의 전쟁의 양상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985회 속에는 왜구들이 해안가를 침범한 일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산출된 통계다. 그런 것까지 모두 전쟁으로 칠 수 있을까?



신라의 통일 이후 한국사에서 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의 전쟁은 세 차례 정도였다. 임진왜란이 대표적이다. 400만의 조선인이 죽었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의 하나다. - 조선은 침략당했다.



1200년대 몽골 침략기에는 100만에서 200만의 고려인이 살해당했다. 30년 전쟁의 결과였다.

 

 



1627년과 1636년의 두 전쟁(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한국사에서는 비극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침략사로 부르기에는 사상자의 숫자가 미미하다. 사망자 수가 수천 명이었다. 만주족이 이 전투를 통해 얻으려 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조선을 짓밟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맹국으로 삼으려고 벌인 전쟁이었다. 조선은 청나라와 손을 잡기로 했으면서 비밀리에 명과 내통했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이 전쟁의 목표였다. 그들은 조선에 군대나 총독을 남겨두고 직접 통제를 시도하지 않았다. 근본 성격이 ‘침략’ 전쟁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육과 절도를 일삼지 않았다. 한 장군이 병사들을 풀어 마을 사람들을 죽이자, 나머지 지휘관들이 그의 권한을 없애고 만주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달성하고자 한 목표는 침략과 정복이 아니었다.

 

 



신라의 통일 이전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668년 이전에는 삼국이 서로 싸우고, 수나라 당나라와도 큰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통일 이후 한반도 국가는 체질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우선 봉건제가 저물고 중앙집권적인 관료국가로 변신했다. 칼에서 붓으로 역사가 전환했다. 일본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칼을 든 자들이 지배층이었으나 한국에서는 문치가 실현되었다. (일본은 그들의 봉건제가 한국의 문치 시스템보다 진보된 체제라고 선전했으나 이는 진실이 아니었다. 폭력적인 무사들의 지배가 전제된 봉건주의가 붓을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보다 낫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힘들다.)

 

 



신라가 통일한 뒤로 나라가 바뀌고 정치적 격변기가 찾아왔으나 대개 문민적이고 평화로운 정부를 유지했다. 특히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갈 때의 원활한 정권이양은 신라 이후 한반도가 얼마나 평화롭고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형성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다른 나라처럼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지배계급이 제거되지도, 수십 년에서 수년 이상 전투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고려의 왕조의 지배계급은 거의 그대로 조선으로 넘어왔다. 지배계급의 제거나 희생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을 시도하고 변화를 꾀했다.



한국사에 대한 관념은 20세기 초 겪었던 혹독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스스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나 역사적 정황과 비교할 때 우리는 안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해 굳이 타국을 침범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고, 타국의 강력한 침략도 그지 많지 않았다. 신라의 통일 이후 역사를 보면 한반도의 정치 시스템은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참고>

마크 피터슨 신채용, <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 지식의숲,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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