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한국인의 밥상’의 탄생
나라가 커진 후 변화가 찾아왔다. 백제 병합 즉시 변화가 폭풍처럼 몰아친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일단 옛 백제 지역에서 백제 부흥운동이 일었다. 당나라는 속을 알 수 없었고, 고구려와는 아직 전쟁 중이었다.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등에 칼을 꽂은 당나라를 물리친 이후에야 통합 작업에 들어갔다. 671년 부여에 소부리주를 설치한 이후 680년 즈음부터 본격화 됐다.
신라는 통일왕국의 위상에 걸맞은 왕궁을 갖추어야 했다. 동궁을 지었다. 동궁이 완성되면서 반달 모양에서 가득 찬 달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동아시아 왕궁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통일 왕조다운 궁궐이었다.
식문화도 바뀌었다. 한마디로 통합이었다. 신라의 그릇이 백제와 고구려로 흘러든 반면, 찜 요리에 필수인 시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양식을 받아들였다. 신라인들은 기존의 시루와 비교해 개량된 시루로 더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문화 공유는 이질감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신라의 지붕 아래 삼국의 음식문화가 융합되었고,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상차림의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참고>
이기천 정요근 외, <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역사비평사,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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