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다
알쏭달쏭, 그러니 큰 기대하지 말기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 썸
알쏭달쏭. 외교전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단어다. 주변국들을 볼 때마다 ‘우방인 듯 우방 아닌 우방 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들이 많다. 친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들…….
100년 전쯤에는 더 헷갈렸던 듯하다. 국제정세를 오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과 관련국들 사이가 대표적이었다.
1909년 즈음, 민족운동가들은 국제사회에 연대해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는다는 정책을 펼쳤다. 그들은 일본이 서구의 열강과 전쟁을 벌일 것으로 봤다. 이른바 ‘미일전쟁설’이었다. 근거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일본인을 극심하게 배척하므로 전쟁설이 유행했다... 일본은 재정이 곤궁하므로 미국에 대적하기가 불가하다.” - <대한매일신보> 1908년 2월
안중근도 비슷하게 추리했다. 그는 “미국이 일본을 배척하고 있고, 러시아도 군사력을 키워 일본과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청인은 청일전쟁에 대한 복수를 기대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연합하면 일본은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독립운동가는 이 설을 굳게 믿고 전쟁이 일어나면 의병을 일으켜 독립을 보장받는다는 ‘전략’까지 수립해서 구체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판단 오류였다. 강대국들의 다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결과였다. 게다가 그들에게 한국은 그리 심각하거나 예민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렇게 됐다면 굳이 바꿀 필요 없는’ 계륵에 불과했다.
병합 직전에도 ‘설’이 유포되었다. 열강의 관심이 열강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동양의 패권을 장악하기 힘들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본이 만주를 먹으면 러시아를 비롯해 열강들이 견제하려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과 러시아는 일본의 진출을 아니꼽게 보고 있고,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이 미국의 만주철도중립화 요구에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이 그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요컨대 미국과 러시아가 일본과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는 거였다.
기대와 달리 열강은 만주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일본과 쑥덕댔고, 영국과 프랑스는 두 나라를 지지했다. 미국은 왈가불가해봐야 아무 소득이 없겠다 싶어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국만 괜히 달뜬 꼴이 되고 말았다.
요즘 들어 더더욱, 미국과 일본의 우정이 만만찮아 보인다. 역사 문제에 관해 한국에 손을 내미는 듯하다가도 일본과 힘주어 악수를 나눈다. 중국도 속을 알 수 없고, 미국은 ‘친구’라면서도 한 번씩 정색을 하고 ‘처신 똑바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명확한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누구에게든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대’대로 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입지를 바로 세우고 정상적인 ‘협상’에 나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하긴, 개인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기대’면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참고>
현광호, <대한제국의 재조명>, 도서출판선인, 2014,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