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
그래도 한국 노래가 좋아!
한국인의 예능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근래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무동도 그렇지만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도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634년, 통신사가 도쿄에 머물 때였다. 막부가 마생재를 보고 싶어 했지만 업무가 많이 공연 날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장마가 계속됐다. 통신사는 하는 수없이 마생재 공연팀과 통역 몇을 남기고 도쿄를 떠났다.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의 청이 워낙 간절했던 까닭이었다.
마상재를 본 막부를 비롯한 고위직들은 후한 상을 내렸고, 일본에서 마상재를 흉내 내는 곡마사가 등장했다. 마상재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들은 조선의 예능에 매료되었다. 1930년대 조선에는 악극단 붐이 일었다. 193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을 했다. 공연 장면은 일본 영화 <생각나는 대로 부인>에 2분 남짓 담겨 있다. <돈타령>을 부르는 김정구와 고복수 등이 <풍년가>를 부르는 모습이 비친다.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딱딱해졌다. 처음에는 한국 가요도 일본어로 번안해 부르게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일본 노래만 부르게 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사건이 벌어진다.
규슈 지방을 순회할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객석에서 조선 노래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올라온 거였다. 악극단에 판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 한 대목을 불러줬다. 그러자 갈채가 쏟아졌다.
악극단의 활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공연에 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조선 노래를 요청한 일본인은 순수하게 조선 음악에 매료된 인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공연 후 갈채가 쏟아졌다. 그들은 국적이나 사랑을 떠나서 조선 노래 자체를 좋아한 것이다. 마상재에 열광한 그들의 조상들처럼.
최근에는 아이돌 한류가 일본을 휩쓸었다. 우리의 음악과 예능에는 그들을 열광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수백 년 동안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분명 뿌리가 있다.
참고>
박진수, <근대 일본의 ‘조선 붐’>, 역락, 2013, 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