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몇 달 전 개봉한 영화다. 광고 카피가 인상 깊다.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계층 이동’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많이 힘들어진 건 사살이다.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면서 끼리끼리 결속을 다지고 높은 벽을 쌓기가 수월해진 까닭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다. 기득권을 확고히 하려는 세력과 이를 허물어뜨리는 이들의 다툼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조선시대의 이야기다.
먼저 ‘힘’을 가진 관리들이 기득권 챙기기에 나섰다. 그들은 임진왜란 이후 특권 중의 특권인 군역 면제를 실현시켰고(1627년), 신분증을 호패도 각패(角牌)를 차서 나무도 만든 패를 달고 다니는 잡역 층과 구분했다.
양반들은 문중과 혈연, 지연, 학연으로 헤쳐모를 가속화 해 아주 견고한 집단을 만들었다. 때로 다른 가문이나 ‘파벌’들과 전쟁도 불사해가면서. 그렇게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
다른 ‘계층’들이 가만히 있었느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 이를테면, 16세기 중반에 중인층에 대한 차별이 심해자 중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응시 자격을 얻어내고(1697), 자식 대부터 유학이라는 직역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국가로부터 받아냈다(1708). 이후 청요직 진출(1772)과 향소, 향교, 서원 등에서 직임을 맡을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냈다(1777). 양반들이 격렬하게 막으려 했지만 이들은 끝끝내 뚫어냈다.
최하층도 마찬가지였다. 영조 임금 때(1731) 부모 중 누구라도 노비면 자식이 노비가 되는 법에서 어머니의 혈통만 노비로 인정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노비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 이들 중에는 성(姓)을 얻어서 양인으로 변신한 이도 있었다. 상민층도 유학과 같은 양반 직역이나 중서층이 하는 일을 차지해 합법적인 신분 상승을 꾀할 수도 있었다. 죽을 고생이 필요했겠지만 실재 그런 성취를 이뤄낸 인물들이 있었다.
얼마 전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재벌3세의 행패를 다룬 영화였다. 대기업 ‘ㄹ’가(家)의 승계 문제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때문인지 관객이 1,000만을 훌쩍 넘었다. 아랫사람들이 견고한 성벽을 쌓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흥행 결과였다. 아주 오래된 투쟁이다. 그리고 힘들긴 하겠지만 결코 무위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참고>
홍순민 외, <조선시대사 1 국가와 세계>, 푸른역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