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조직적응력

프로시안 2021. 3. 2. 20:02

조직적응력

 

 

 

 

 

 

 

괴물들의 사회



사람은 결국 적응한다. 처음에는 호흡이 곤란해진 정도로 충격적인 일에도 차차 적응한다. 보통의 생각과 느낌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면 괴물이 된다. ‘망나니’가 그랬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회자수라고 했다. 사형집행자였다.



을사사회(1545) 때 목숨을 잃은 윤준은 괴물 망나니를 경험했다. 사형을 앞두고 회자수가 돈을 요구했다. 윤준은 “돈을 준다고 내가 안 죽겠는가!”하고 대답했다. 망나니는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였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비슷한 예로 순조 임금의 능을 잡은 지관 이시복의 처형을 들 수 있다. 사형을 한 후에 그의 시신을 확인해 보니 난도질이 되어 있었다. 1835년 3월16일자 ‘승정원 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저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임술록’에 따르면 망나니들은 명절 즈음이면 떼를 지어 시장에 나타나 물건과 돈을 빼앗기도 했다.



조금 특별한 사형집행인도 있었다. 전옥서 소속 형형쇄장이었다. 전옥서는 한양에 설치한 감옥으로 형조 소속 구금 전담기관이었다. 형형쇄장은 사형수 혹은 중죄인이 맡았다. 사형을 집행하면 사형을 면제해주었다. 자원을 받은 탓인지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망나니’를 하지 않으면 당장 본인이 죽을 것이었지만, 그대로 거부하는 이들이 많았던 듯하다. 한번은 간신히 설득한 끝에 사형집행을 하도록 했지만 두 번째는 아무리 겁을 주고 달래도 칼을 잡지 않으려고 했다.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이 버마의 감옥에서 겪은 일을 들여다보면 사형집행을 거부한 형형쇄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감옥의 소장부터 직원들까지 처음에는 덤덤한 태도를 보인다. 소장은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데 짜증을 냈다.



“제발 좀 서둘러, 프랜시스. 지금쯤 저 사람은 벌써 죽었어야지. 아직도 준비가 안 됐나?”



그는 직원에게 변명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끝나야 죄수들이 아침 식사를 하지.”



사형집행이 끝난 후 그들은 아침부터 술판을 벌인다.



‘다들 웃었다. 소장조차도 너그럽게 싱긋 웃었다. “다들 나가서 한잔하지.” 그가 상냥하게 말했다. “내 차에 위스키 한 병 있어. 그걸 마시면 되겠군.”’


 

 


사형집행이라는 찜찜한 ‘업무’를 집행하면서 조지 오웰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한 사람의 생명을 끊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자각한 순간이 있었다. - 어쩌면 꼭 한번 사형집행을 하고 두 번째는 절대로 사람 죽이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 ‘사형수’도 이런 순간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교수대까지 35미터 정도 남았을 때였다. 주인공은 죄수의 등을 쳐다보면서 걷고 있었다. 죄수는 멈추거나 뒤로 제자리에서 버티는 일 없이 착실하게 앞으로 걸었다. 평소 걸음걸이와 다를 바 없었다.



‘한 번은 간수들에게 양쪽 어깨를 잡힌 채 살쩍 걸음을 옮겨 웅덩이를 피하기도 했다.’



바로 그 순간 조지 오웰은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바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자각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까지 건강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다. 나는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려고 걸음을 살짝 옮기는 모습을 보고서야 한창때인 생명을 끊는다는 수수께끼를,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된 일임을 깨달았다. 이 남자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었다. 신체의 모든 장기가 잘 작동했고-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가 재생되고, 손톱이 자라고, 조직이 형성되고 있었다-전부 어리석을 만큼 장엄하고 악착같이 움직였다.’


 

 


사형이라는 극단의 순간에 마주친 ‘인간’의 모습은 사형집행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눈에 씌워있던 ‘일상’ 혹은 ‘업무’라는 색안경을 벗겨버렸다.



‘인간’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타성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모성이나 가족애 같은 거대한 정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편견과 특정한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가장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시각과 사고로 돌아가게 할 만한 ‘인간’ 혹은 ‘인간적인’ 모습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 인식되기 위해 혹은 ‘인간’을 인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조지 오웰이 비판한 류의 ‘괴물’들의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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