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역사
상하이의 빛과 그림자
경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 있고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일도 있다. 아무리 그럴싸한 계획과 자본 투입이 있어도 후자는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다. 상하이의 흥망성쇠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선 상하이의 탄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하이의 근대화는 황푸강변에 번드(bund)에서 시작됐다. 힌두어로 제방, 중국어로는 ‘와이탄’이었다. 19세기 영국이 동아시아 각지로 침투하면서 생긴 ‘항만 거주지 특유의 수변 지역 공간’을 의미했다. 배가 닿고 사람과 물건이 오르내리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사업과 경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상하이도 다르지 않았다. 반드를 중심으로 4개의 큰 길이 닦였다. 30년 뒤인 1870년대에는 영국대사관과 프랑스영사관 사이에 18개의 상관과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찼다. 19세기 아시아인들을 홀린 휘황찬란한 상하이의 탄생이었다.
‘이제부터 출항이다, 유쾌한 항해다
꿈에 본 그 상하이로
남중국해 담력으로 건넌다
우지마라 차르멜라, 밤안개 속에서
울면서 나는 것은 신천옹
붉은 등불이 한들거리면서 손짓한다
상하이! 동경의 상하이!’
쇼와 시대의 대표적 시인이자 작사가였던 사이조 야소가 1938년에 만든 노랫말이다. 제목은 ‘상하이 항로’였다. 말 그대로 ‘동경의 상하이’로 향하는 설렘이 잔뜩 묻어났다.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도시 중의 하나였고, 일본은 낯선 문물로 가득차 번영하는 도시에 매료되었다. 후일 서구의 여러 제도와 문물을 직접 도입하고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하이의 매력은 사라졌지만, 초기에는 일본인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 메이지 국가를 성립한 시점부터 일본인들에게 상하이는 반식민지이자 국가적인 ‘아이덴티티’도 가지지 못한 어정쩡한 곳으로 전락했다.
이후 일본의 폄훼보다 더 혹독한 역사가 상하이에 찾아왔다. 1937년부터 1957년까지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일본, 왕징웨이 정권, 국민당, 공산당으로 주역이 바뀌었고, 그 사이 100년 넘게 키워온 역동적인 도시의 풍경은 사라졌다. 밋밋한 도시로 변모해갔다.
상하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 사람’들도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1937년부터 문화인과 언론인을 비롯해 저명인사들이 홍콩을 비롯해 우한, 충칭으로 떠났다. 일본이 패전한 뒤 다시 상하이로 왔으나 1946년 국공 내전에 일어나자 홍콩으로 이주했다. 좌와 우 모두 차례대로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홍콩과 대만, 그리고 중국 곳곳으로 흩어졌다.
공산정권이 상하이를 틀어쥔 뒤부터 경제인과 산업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모두 4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내지지원, 3선지원, 변강지원, 상산하향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대규모 인재와 기술, 자재를 중국 곳곳으로 흩었다. 내지지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953년에 시작해 상하이 각 공장에서 17만의 기술노동자와 3만의 공정기술자를 차출해 중국 내륙으로 파견했다. 3선지원 때는 상하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공장 수백 개를 후난성, 쓰촨성, 구이저우서응로 옮겼다. 경제 지원 목적이었다. 변강지원과 상산하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각지로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60년대 초반에 5만,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연 100만 명이 헤이룽장, 내몽골, 윈난, 구이저우 등으로 파견됐다. 그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작은 상하이’로 불렸다.
그 사이 ‘큰 상하이’는 쇠락해갔다. 1990년대 개방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기 전까지, 상하이는 과거의 휘황한 풍경을 회복하지 못했다. 79년의 ‘중외합자경영기업법’과 84년 개방도시승격에 90년 푸둥 개발 승인으로 안팎의 투자가 몰리면서 가까스로 과거를 훌훌 털어낼 길을 발견했다.
상하이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100년의 경제적 노하우 축적과 발전에 이은 인재와 산업의 유출이다. 상하이인을 받아들인 홍콩과 대만은 발전을 거듭했으나, 본토로 흩어진 인재와 산업시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상하이의 인재와 시설이 각 지역의 경제를 힘차게 끌어올리길 바랬지만, 기대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특정 기관이나 거대 인프라만 구축하면 저절로 경제가 일어날 것 같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 다양한 규제, 그리고 그 지역민들의 역사적ㆍ경제적 노하우 등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발전동력일 것이다. 나머지는 거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