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 발견
그 시절에 희망봉을 넘어갔다면
희망봉 -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주 남서쪽 끝을 이루는 암석 곶(串).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처음으로 돌면서 카보토르멘토 주(폭풍의 곶)라고 명명했으며 1497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를 향해 항해하면서 통과했음.
유럽은 희망봉을 넘어 아시아와 만났다. 희망봉을 지나 아시아로 진출한 국가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이다. 이들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원거리 무역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탈리아는 이 거대한 무역의 흐름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대항해 시대 이탈리아는 큰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현대에 와서도 중국발 바이러스에 가장 먼저 공격당한 유럽국가가 되었을 만큼 위상이 크지 않다.)
희망봉은 의미심장한 역사로 남았다. 유럽인들이 활발히 아시아로 진출해 심지어 아시아의 물류까지 책임지게 될 때까지, 아시아 상인 중에는 아무도 희망봉을 넘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배들이 유럽에서 출발해 아시아, 남미를 두루 오가며 다양한 상품을 실어나를 동안 아시아 상인들은 아시아에 머물렀다. 유럽 상인과 아시아 상인의 결정적 차이였다.
희망봉을 넘는 것은 기술 개발이나 경영법 같은 ‘내용’이 아니라 투박한 외형적 성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이 껍데기가 내용까지 충실하게 채웠다고 증언한다. 희망봉을 넘어간 상인들의 집념과 도전정신은 어떤 기술의 진보나 새로운 경영 기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혁신이었다.
김우중은 세계경영을 선언했다. 1967년 창업한 이후 연평균 280일을 해외에서 뛰었고, 국내 계열사와 해외법인을 각각 41개와 396개나 열었다. 대우라는 간판을 걸고 거대한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했다. 우리 기업 중 가장 먼저 세계로 진출했다. 어쩌면, 현재 한국 기업이 지니고 있는 글로벌한 시야와 경영 전략은 가장 먼저 ‘희망봉’을 넘었던 김우중의 성취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