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순진한 스미스 씨
아메리카의 발견,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동인도제도로 향하는 바닷길을 개척 이후 유럽인들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났다. 그들은 압도적 기술력 등을 앞세워 아시아 국가들을 제압하다시피 했다. 이는 비유럽권 사람들에겐 불행이었다.
‘이 두 발견이 이루어지던 특정한 시기에 유럽인들의 힘의 우월성은 너무나 확연하여 그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온갖 불의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었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그 시절 중국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대부분 비극이었다. 한때 중국은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땅이 비옥하고 잘 경작되어 있으며, 사람들도 근면하고 인구도 조밀한 나라’였다. 정화의 원정(1차 1405~1407, 7차 1430~1433) 이후 바다를 버렸고 세상이 변해가는 사이 중국은 정체되어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비극이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고 봤다. 비극의 해결은 균형을 되찾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었다. 아시아인들이 더 강해지거나 유럽인들이 약해져서 용기와 힘의 균형에 도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상호 간의 공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었다.
이러한 힘의 균형을 찾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교류였다. 중국이 했던 치명적인 실수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힘의 균형을 가져오는 수단으로는 폭넓은 지식과 모든 종류의 개선된 제품들을 상호교환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국부론)
이러한 상업활동의 효과는 분명했다.
‘온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서로 폭넓게 상업 활동을 벌일 때 그런 상호소통과 개선이 자연스럽게 혹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국부론)
우여곡절 끝에 중국은 문을 열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힘의 균형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세상이 완전한 균형은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균형의 대열에 합류한 국가가 보다 약한 국가를 상대할 때는 국제적인 룰을 어기고 불균형의 이점을 누리려 한다.
이를테면, 불균형의 폐해를 가장 많이 보았던 중국이 불균형의 이점을 만끽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자기보다 더 약한 나라들을 부도의 늪으로 빠트리고 각종 이권을 싹쓸이해가는 방식이다. 역사의 피해자가 기껏 균형이 찾더니 가해자로 돌변한 셈이다. 애덤 스미스의 예언은 반만 맞았다.
참고>
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이종인 옮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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