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아무리 양반이라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양반은 태어날 때부터 확실히 유리했다. 지방이든 서울이든 양반이라는 신분만 쟁취하면 군포와 요역에서 면제를 받았다. 사액 서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의례를 통해 양반의 기득권을 확인시키고 또 보장받았다. 양반이 좋았다. 양반만으로도 좋았기에 문과 급제의 예비단계 격인 생진시 합격도 의미가 있었다. 그곳에만 합격해도 양반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세습되는 권력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진출한 관료 사회는 단순히 출생만 가지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이는 출생으로 그저 얻은 신분 정체성을 상쇄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한미한 집안임에도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관료제의 핵심은 성과와 공로였다. 비귀속적 성취가 양반의 최종 위치를 결정했고, 이는 반대로 가문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사회에도 세습의 행렬에서 낙오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권력이든 기업이든 그 무엇이든 훌륭한 아버지 밑에 평범한 자식이 태어나 전대가 쌓은 ‘가문의 규모’를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가능하다.
참고>
황경문, <출생을 넘어서>, 백광열 옮김, 너머북스,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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