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기득권자

프로시안 2022. 7. 3. 19:27

기득권자

 

 

 

 

 

 

 

후투 VS 투치,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

 

 

  기득권. 한번 쥐면 놓기 싫다. 누군가 빼앗으려고 하면 목숨을 걸고 버틴다. 원래 없던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가진 이들에게는 죽었으면 죽었지 빼앗기기 싫은 무엇이다.

 

  기득권 중의 최고 기득권은 혈통이 아닐까. 혈통은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의 혈통’이 어떤 기득권을 보장한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1863, 영국의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가 흥미진진한 가설을 발표했다. 아프리카 흑인 중에 백인의 피가 섞인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가 보기에) 에디오피아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 유난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50여년 르완다에 불어 닥칠 핏빛 역사의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을 한다.

 

  1918년 벨기에가 르완다를 점령했다. 그 이전에는 독일이 주인 노릇을 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물러났다.

 

 

 

 

  르완다에는 세 종족이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트와족이 정착했는데 10세기에 농경미족인 후투족이 들어왔고, 14세기에 다시 투치족이 쳐들어왔다. 처음에는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이 구분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종족의 구분이 희미해졌고 나중에는 그저 신분 차이를 상징하는 말쯤으로 정착됐다.

 

  벨기에는 ‘피부 빛’에 대한 권위를 정립하고 싶었던지 백인에 가까운 흑인을 구별했다. 그들은 투치족을 지배계급으로 정했다. 인종을 격리했다. 출세의 상한선도 정하고 교육도 차별했다. 인종 구분이 애매한 경우 소를 몇 마리 기르고 있느냐에 따라 투치와 후투를 나누기도 했다. 인종 신분증도 만들었다. 그 결과 투치 14%, 후투 85%, 트와 1%로 나뉘었다.

 

  투치족은 혈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후투족을 지배하는 법을 배웠다. 후투족은 ‘순종’만 강요받았다. 강제 노역이 있으면 투치족은 채찍을 휘둘렀고 후투족은 맞으면서 일했다. 가장 높은 ‘클래스’를 차지하고 있던 벨기에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투치)들이 후투족을 때리지 않으면 너희가 맞을 것이다.

 

  후투족은 투치족들을 증오했다. 벨기에인들은 어차피 이방인, 얼마 전까지 평범한 이웃이던 이들이 자신들 위해 군림하려 들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벨기에인들은 ‘백인의 피가 섞인 흑인’ 종족을 구별한 덕에 자연스럽게 최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1946, 세상이 바뀌었다. 벨기에의 통제는 여전했지만 유엔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유엔은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수립하면 독립을 승인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벨기에는 투치와 후투의 질서를 뒤집었다. 그들은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손을 잡았다.

 

 

  이후 르완다의 주류는 후투족이 되었다. 그들은 ‘인종 차별’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과거에는 억압의 이유였던 ‘혈통’이 이제는 기득권을 보장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벨기에가 “미안하다 인종 신분증 철회하자.”고 했으나 후투족은 단호하게 말했다.

 

  “노!

 

  이때부터 후투와 투치는 지난날의 앙금 때문인지 서로를 비난하며 게릴라전을 펼친다.

 

  그 사이 르완다에는 몇 명의 독재자가 등장한다. 그중 하바아리마나 대통령이 르완다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아니 그보다는 그의 배후 세력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기득권을 잡고 있었고 때로는 대통령도 무시했다. 사실 하바아리마나도 그들 덕에 대통령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990, 프랑스를 비롯해 외부 세력들이 ‘원조’를 주는 대신에(1980년대 후반 르완다의 주력 수출 산업을 담당했던 커피와 차의 국제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가 붕괴했다), 민주화를 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르완다에는 강제 노역장까지 있었다.

 

  하바아리마나는 개혁을 미루었다.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대통령의 뒤에 숨어 있던 기득 세력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투치족의 음모’ 따위를 연일 선전했다. 1993년 ‘후투 파워’를 결성해 자신들의 기득권에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을 했다.

 

  운명의 1994 4, 평화협정을 논의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하바아리마나 대통령이 피살된다. 누군가 그가 탄 전용기를 격추시켰다. 전쟁이 시작됐다.

 

 “투치 족의 음모다!

 

  ‘후투 파워’의 핵심세력과 평범한 후투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100일 동안 80만에서 100만의 무고한 시민(배신한 후투족과 투치족)을 살해했다.

 

  1994 7, 투치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애국전선’이 르완다의 수도를 향해 진격한다. ‘후투 파워’는 기고만장했지만 며칠 만에 진압당했다. 기득권이 무너졌다. ‘애국전선’은 후투와 투치 간의 차별을 철폐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기득권의 유혹은 이토록 크다. 없었으면 모르되 있고 나면 결코 잃기 싫은 것. 마약보다 더 달콤한 무엇. 원래 없던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욕심이지만, 있고 보면 알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떨치기 힘든 것인지를. - 동서고금의 여러 현자들이 충고한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한, 결코 그 단맛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고>

정찬일, <비이성의 세계사>, 양철북, 2015,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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