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

집단

집단 스승과 제자 김종직은(1431-1492)은 아내를 선비라고 불렀다. 시구에 들어간 단어였다. 김종직이 몸이 안 좋아 집에 있던 날, 아내가 국화주를 내와다. 당시는 흉년으로 술값이 뛴 즈음이었다. 국화주 석 잔을 마시고 나자 시가 절로 흘러나왔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참으로 단정한 선비시네 노랑 국화가 향기도 국중의 제일이라네.’ - ‘점필재집 시집’ 제19권 술 한잔 값만은 아니었다. 평소 김종직은 아내에게 예와 정성을 다했고, 아내의 평소 언행과 성품을 존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선비와 같았다. 김종직이 결혼생활에 정성을 쏟은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 김숙자(1389-1456)는 젊은 시절 집안 어른의 명을 따라 공산 한씨와 결혼해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으나, 신분상의 허물이 있..

안순

안순 세종 임금의 ‘재난 해결사’ 발탁 조건 갑자기 재난이 닥쳤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화재면 화재, 기아면 기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사고가 일어난 지역에 대한 지식이다. 특정 지역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잘 모르면 재난 상황을 수습하기 힘들다. 1436년 조선에 흉작 사태가 벌어졌다. 수년째 이어진 재난이었다. 그중에서도 충청도가 가장 심했다. 임금은 충청도 관찰사에게 이런 교지를 내렸다. ‘근래에 굶주려 죽는 백성이 대단히 많다고 들었다. 내가 심히 송구하게 여긴다. 그런데 왜 경은 이러한 사정을 한 번도 보고하지 않는가? ...내가 사람을 파견하여 상황을 조사할 것이니 경은 온 힘과 마음을 다하여 널리 살피고 구휼하여 단 한 사..

세종대왕 업적

세종대왕 업적 대왕, 시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꺼내든 카드는?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급선무니, 직무에 적임자인 관원을 선발한다면 모든 일이 다 잘 다스려진다.” - 세종실록 5년 11월25일 조선시대에서는 과거로 인재를 선발했다. 필기시험인 만큼 이견이 적었다. 문제는 이 시험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재를 파악되느냐 점이었다. - 이는 필기시험이 가지는 공통적인 난제였다.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심층적인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과거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게다가 시험 과목이 한정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요즘 시행되는 필기시험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 뛰어난 인재를 골라내는 완벽한 시험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종은 시험 외에 인재 추천법을 적극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