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왜곡되다

프로시안 2021. 5. 1. 21:25

왜곡되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여긴 군대야!”

  군대 가서 제일 자주 들은 이야기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군대가 사회와 다르다’는 인식을 심으려는 것이다. 나쁘지는 않다. 훈련 중에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거나 그리움을 삭힐 때는 ‘여긴 군대’라는 생각이 도움이 된다. 다만, 온갖 비정상적인 사고와 상황을 합리화하는 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서구의 주류 인종은 한때 피부 빛에 따라서 사람마다 존중받는 정도가 달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저들은 (피부와 출신지, 혹은 계층이) 우리와 다르니까 차별을 받아도 된다’는 의식에서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한때 노예였던 이사벨라 바움프리(1797~1883)는 늘그막에 ‘백인과 다른 인종’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강연에서 밝힌 적이 있었다. 1851년 오하이오에서 열린 집회에서였다.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마차까지 데려다줘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네줘야 하고, 어디서든 제일 좋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한번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누가 마차까지 데려다준 적도, 안아서 진창을 건네준 적도, 제일 좋은 자리를 내준 적도 없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보세요! 내 팔을 보세요.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작물을 수확해 헛간에 들여놓는 일을 해왔답니다. 그 일에서 어떤 남성도 날 당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했고, 남성만큼 먹었답니다. 물론 먹을 게 있을 때 말이에요. 또 채찍질도 남성만큼 견뎌냈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답니다. 내가 어미의 슬픔에 겨워 울부짖을 때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군인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고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군대는 확실히 사회와 다르다.

 

 

 

 



  그러나 이 다름이 일종의 편견으로 작용해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왜곡시키는 것은 문제다. 비정상을 허용하는 것이 군대라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민간인이나 약자들에 대해 올바른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긴 군대”라는 말이 훈련이 힘들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뜻 이상의 왜곡된 의미가 담겨 있다면, 그곳은 군대도 뭣도 아닌 그냥 이상한 동네일뿐이다.

 

참고>

제임스 잉글리스, 강미경 옮김,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말, 말, 말>, 작가정신, 2011, 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