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국민
국민의 탄생
17세기 유럽은 한 마디로 ‘전쟁터’였다. 30년 전쟁(1618-1648)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전쟁이 연이어 일어나 100년 동안 전쟁이 없던 기간은 4년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높은 세금에 시달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런던의 템스강이 얼어붙을 정도로 갑작스런 추위가 덮치기도 했다. 기후 위기 탓인지 페스트가 기승을 부렸고 흉작도 잦았다.
격렬한 갈등과 고난의 시기였으나 분명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 주권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다. 주권 국가 체제란 국가 주권이 각각의 국가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국가들끼리 서로의 통치 영역을 인정하는 시스템이었다.
과거는 어땠을까? 신성로마제국이 유럽의 어느 지역이든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히 어느 국가에 소속되었다는 생각이나 느낌도 없었다. 그들의 전쟁은 왕과 귀족을 위한 전쟁이었고, 반란이란 것도 민족이나 국가의 관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압제하는 세력에 대한 저항일 뿐이었다.
이들은 주권을 확립하려고 또 주권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전쟁을 벌였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도 그런 류의 투쟁이었다(1652-1674). 영국은 네덜란드령 뉴암스테르담을 손에 넣었다. 지금은 그 지역을 뉴욕이라고 부른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성로마제국의 사망 증명서’이자 새로운 세상을 여는 선언문 같은 것이었다. 루터와 칼뱅파는 국가 정체성의 한 축을 이루는 핵심 요소였던 카톨릭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제국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국가가 유럽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수많은 주권 국가가 대등한 관계를 가지는 세계가 완성되었다.
다음 세기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관념적인 부분에서 국민 국가의 개념을 더욱 확고히 했다. 프랑스 혁명은 국민이란 개념을 정착시켰다. 30년 전쟁 이후에도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또렷하지 않았던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상식’을 확고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구체적인 결실이 국민군이었다. 국민군은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로마 공화정식 시민군에서 따온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국민군은 일반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었다. 징병제가 참정권과 시민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발판이 된 것이었다. 징병의 대가로 얻은 참정권은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졌다. 왕조가 귀족이 아닌 국가만을 바라보는 국민의 탄생이었다.
참고>
이와타 슈젠, <세계사, 뭔데 이렇게 재밌어?>, 리듬문고, 2023년